벌써 ‘색깔론’으로 치닫는 여야 논쟁
나라마다 건국이나 독립 의미 달라
어디로 가든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
‘8월의 역사전쟁’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68주년’ 언급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반역사적ㆍ반민족적”이라고 때렸다. 8ㆍ27 전당대회를 앞둔 3인의 대표후보도 거들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김상곤 후보), “항일 독립운동의 정통성 부정”(이종걸ㆍ추미애 후보)이라고 비난했다. 여당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야말로 반역사적, 반헌법적, 반국가적 주장을 삼가라”고 맞받았다. 심재철 국회부의장 등은 아예 건국절 법제화 주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광복 이후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나경원 국회 통일외교위원장)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알겠다. 한쪽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성공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한쪽은 그러길 주저한다. 그런데 아리송하다. 더민주 이종걸ㆍ추미애 대표후보가 각각 “관동군에 복무한 아버지 때문” “건국 이전의 친일행적을 정당화하려는 저의”라고 비꼰 것으로 보아 박근혜정부라는 시기적 특성이 핵심 요소인 듯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건국 60주년’ 언급도 거의 같은 논쟁을 불렀다. 각각 산업화ㆍ민주화 세력을 대변한다고 믿어서일까. 그런 각각의 믿음과 달리 두 세력은 여야 모두에 혼재해 있다. 무게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을지는 몰라도, ‘친북’이나 ‘친일파’ 색깔을 칠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부질없다. 학문적 논쟁조차 동문서답으로 치닫는 마당이다. 하물며 눈앞의, 나아가 내년 대선을 가늠한 이해타산의 결과인 정치적 논쟁이야.
애초에 광복과 건국을 명백히 가리려는 생각 자체가 무리다. 나라마다 독립ㆍ건국의 역사적 배경이 달라 일반화가 어렵다. 1776년의 독립선언에 따른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 1949년 공산혁명 성공에 따른 중국의 건국기념일(국경절), 건국신화를 근거로 한 일본의 건국기념일(2월 11일) 등 이름과 내용이 각각이다. 우리처럼 구체제와 식민지 시대를 모두 거친 인도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이 47년 식민통치를 포기한 날(8월 15일)을 독립기념일로 삼았다.
그렇다고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규정한 헌법 전문을 들어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폄하하거나, 건국 언급을 곧바로 반헌법적이라고 몰아붙일 일도 아니다. 불교에서 나온 ‘법통’의 뜻을 제대로 새기면, 대한민국이 임정의 정통 후계자라는 뜻이다. 이를 거꾸로 ‘대한민국의 뿌리는 임시정부’라고 읽는 사람도 있지만, 광복절 대신 1919년의 임정 수립일(4월 13일)을 앞세우자는 극단적 주장은 하지 않으니 괜찮다. ‘법통’ 표현은 제헌 당시 북한 정권과의 정통성 싸움에 신경을 쓴 흔적이지만, 북한이 김일성 정권 수립 이후 임정의 독립운동보다 항일 빨치산 투쟁을 내세워 왔다는 점에서는 헛수고였던 셈이다. 임정의 상징성을 강조하면 진보고, 흐리면 보수라는 현재의 잣대도 의심스럽다. 70년대와 80년대 초 운동권에서는 임정에 대한 적극적 평가는 보수성의 징표로 통했다.
비교적 자주 지적된 정부와 국가의 혼동은 딱히 어느 한쪽만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여권이 정부수립과 국가건립을 혼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권의 ‘건국’ 주장을 반박하는 야권조차 ‘건국 이전의 친일행동’을 거론한다. 그러니 일반국민의 언어감각에 맞춰 국가작용의 주체인 정부와 국가를 섞어 써도 그만이다. 일제의 패전으로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1945년의 광복은 그 자체가 독립인 동시에 민주국가 건설을 기정사실화한 일대 사건이어서 광복절이면 됐다. 그 이후의 산업화와 민주화 성취는 얼마든지 따로 평가해도 된다.
이렇듯, 건국절 논란은 멀리 가기 어려운 운명이다. 그저 역사인식이 다른 상대 진영을 향한 적대감만 키우는 헛된 논란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논란이 막다른 골목에 이를수록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상징성이 커지는 점이 눈에 띈다. 그는 임정과 대한민국 정부 양쪽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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