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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이광수 최남선은 안 되는 이유

입력
2016.08.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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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 한국문인협회는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 제정 사실이 공표된 뒤 문학계 안팎의 역풍을 맞고 며칠 만에 백기를 들었다. 1만 3,000명의 문인이 모였다는 한국문협은 동네 반상회보다 못했다. 춘원과 육당은 서로 판박이나 같았던 대표적인 친일 문인이다. 그들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제정하기로 작심했다면 친일 과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기념되어야만 하는 문화 내적인 근거가 제시되어야 했다. 한국문협이 믿었던 것이라고는, 내년이 한국근대소설의 효시인 ‘무정’이 출간된 지 100주년째라는 상징적 위세밖에 없었다.

김동인과 서정주는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버젓이 등재되어 있지만, 1955년과 2001년부터 두 사람을 기리는 문학상이 만들어졌다. 동인문학상과 미당문학상을 받는 시인ㆍ소설가들은 두 사람의 문학적 성취와 정치적 과오를 기막히게 분리한 뒤, 문학적 성취와 상금만 선택해서 받는 모양이다. 포정해우의 솜씨다. 김동인 서정주는 되고 이광수 최남선은 안 되는 이유는, 전자는 문사 나부랭이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사회적 활동의 비중이 글쓰기보다 더 컸던 때문이다.

최남선(좌), 이광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남선(좌), 이광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함석헌은 ‘새 시대의 전망’(백죽문학사,1959)이라는 제목으로 초간되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생각사,1979)라는 제목으로 재간된 책에서, 이승만 시절에 개최된 ‘육당ㆍ춘원의 밤’에 대한 감상을 적은 바 있다. 그는 무려 여덟명의 강사가 나섰던 육당ㆍ춘원의 밤을 실패한 강연회였다고 단정짓는다. 함석헌은 강당 문을 나오면서 “소금이 아니 들었구나!”라고 분개하고 “점잖음이 사람 죽이누나!”라고 탄식했다.

“강사들이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두 분이 다 문제를 가지기 때문이다. 총독부의 사료 편수관(최남선)이 됐고 학도병 나가라는 권유 강연(이광수)을 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것을 잘했다 할 수는 없으니 말을 끄집어내면 그것에 대한 비판을 안 할 수 없고, 하면 고인에게 욕이 될 것 같고, 이러므로 될수록 그 문제는 건드리지 말자 해서 그 말은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픈 데 건드리지 않고 고치는 의사는 어디 있으며 병 고쳐 주지 않고 인술이 어디 있나? 그것 하자고 연 밤에 그것 아니 했으니 무슨 의미인가?”

김현이 자신의 이광수론 첫머리에 써서 유명해진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그런 상처와도 같다”던 말의 기원이 여기 있다. 함석헌은 이 글에서 “그들은 참 잘 울었다”면서 육당과 춘원이 펴낸 잡지와 작품의 이름을 죽 열거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다 이 민족을 위해 울고 이 나라를 위해 슬프게 힘 있게 우렁차게 운 것 아닌가? 민중은 한때 그들 안에서 자기의 가슴에 사무친 불평을 시원이 울어낼 수 있었다. 육당ㆍ춘원 울라고 하늘이 천분을 주어 내보낸 울음꾼이 왜 마지막까지 울지 못했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나머지는 독자들이 찾아 읽으시라.

원래 8월은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와 반일 정서가 분기탱천하는 달이다. 8월은 걸그룹(소녀시대)이 광복절 하루 전날 도쿄에서 공연한 것만으로 비난받는 달이고, 일본제국의 군기를 이모티콘으로 사용한 가수(티파니)를 연예계에서 영구퇴출시켜야 한다고 광분하는 달이다. 언론이 한국문협의 어설픈 계획을 폭로한 것도 8월이다. 함석헌은 “자기 발견의 정도가 낮은 민중일수록 우상적인 숭배에 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량 좁은 제재(制裁)를 한다. 그래 가지고는 사회는 건전한 발달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8월은 광복의 기쁨이 넘쳐나는 달이 아니라, 1년 동안 친일을 했던 죄의식을 정화하고자 서로를 밀고하는 달이다. 매일 제대로 ‘울었(깨어 있었)’다면 어쩌자고 속죄월(贖罪月)이 따로 필요할까. 모든 문인들이 저 상을 욕스럽게 여겼다면 애초부터 반대 운동을 할 필요도 없다. 모두들 안 받을 테니 그까짓 상 정도는 생겨도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거부할 것이 분명한 그 상을 ‘누군가는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춘원ㆍ육당 문학상 제정을 원천봉쇄 했다. 이 두려움은 어디서 왔는가.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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