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는 90억원이고 관객들의 평점은 8.84(10점 만점)인 영화가 있습니다. 1,000만 영화에 많이 출연해 ‘천만 요정’이라는 별명을 지닌 배우 오달수가 주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유명 여배우까지 출연했습니다. 게다가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을 관계사로 두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흥행을 위한 조건들을 어느 정도 갖춘 듯합니다.
하지만 관객은 57만7,446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18일 기준). 1년 중 최고 대목인 여름 성수기에 개봉해 9일 동안 거둔 흥행 성적으로는 초라하기만 합니다. 최근 개봉한 주요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상황입니다. ‘부산행’(1,104만2,460명)과 ‘인천상륙작전’(656만8,409명) ‘덕혜옹주’(433만1,062명) ‘터널’(396만5,847명)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흥행 참패가 더 쓰라릴 지경입니다. 흥행작 ‘국가대표’(2009)의 뒤를 이어 여름 흥행몰이에 도전했던 ‘국가대표2’는 왜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요.
‘국가대표2’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빙상연맹이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급조한 뒤 벌어지는 사연을 그리고 있습니다. 북한 아이스하키 대표팀 출신으로 탈북한 지원(수애),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다가 쫓겨난 채경(오연서) 등이 빙상연맹의 ‘기대’와 달리 맹훈련을 거쳐 동계 아시안게임에 출연하는 과정이 웃음과 눈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남북분단의 비극, 비인기 종목의 설움, 박진감 넘치는 아이스하키 경기 장면 등 관객들의 호감을 살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기선 싸움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부산행’(NEW)과 ‘인천상륙작전’(CJ엔터테인먼트), ‘덕혜옹주’(롯데엔터테인먼트), ‘터널’(쇼박스)은 이른바 충무로 빅4로 분류되는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영화입니다. 이들 영화엔 언론의 관심이 오래 전부터 쏟아졌고, 흥행대전의 주요 작품으로 분류됐습니다. 네 작품 중 어느 한 작품이 언급되면 다른 세 작품이 함께 다뤄지는 식이었죠. ‘국가대표2’는 여름 흥행대전 하면 떠오르는 영화 빅4에 끼지 못하면서 기선을 뺏겼습니다. ‘국가대표2’의 투자배급사는 메가박스플러스엠입니다. 2014년 설립된 신생회사로 ‘제보자’(2014)와 ‘미쓰 와이프’(2015), ‘동주’, ‘날, 보러와요’(2016) 등 중급 영화를 주로 배급해왔습니다. ‘미쓰 와이프’ 등이 짭짤한 흥행 성적을 올려 최근 주목 받았으나 빅5라는 새 범주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기선 싸움에서 밀리니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 힘들었고, 스크린을 확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속편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국내 극장가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속편이 환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국가대표’에 이미 만족감을 얻은 관객이 속편까지 보려면 좀 더 화려한 출연진이나 강렬한 요소를 지녀야 한다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남자배우가 여자배우들보다 극장가에서 우대받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분투를 그려낸 ‘국가대표2’가 불리했다는 것입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속편의 한계를 감안했을 때 과연 주연배우 수애와 오연서가 ‘국가대표’의 하정우를 넘어설 만한 조합이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특수를 노린 전략적 오판도 흥행 참패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리우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 개봉해 오히려 TV중계에 관객을 뺏겼다는 해석입니다. 영화나 TV드라마보다 극적인 장면이 속출하는 올림픽 중계와 맞대결을 자초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입니다. 영화계에선 인기 종목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보다 비인기 종목을 앞세운 영화가 더 흥행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인기 종목의 경우 관객들이 실제 경기에 더 집중하고 지식도 많으니 눈높이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비인기 종목을 내세운 ‘국가대표2’는 비인기 종목이 반짝 사랑을 받는 올림픽 기간에 개봉했습니다. 스포츠 영화로서 관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요소를 스스로 버린 셈입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경쟁할 영화들도 만만치 않은데 올림픽과도 경쟁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며 “올림픽과 겹치기 개봉이 주요한 흥행 패인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국가대표2’의 패인을 따지다 보니 영화가 상업성과 완성도만으로 흥행할 수 없는 현실을 절감합니다. 영화 배급과 마케팅 전략 등 치열한 두뇌싸움이 필요합니다. 여름 흥행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빅4보다 높거나 뒤지지 않은 관객 평점을 받고 있는 영화이니 뒷심 흥행을 기대해 봅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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