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어느 날 서울 아현동 635번지. “밥 먹으러 왔어요.” 담벼락의 페인트칠이 비늘처럼 일어난 집들이 쭉 늘어선 비좁은 골목으로 난 계단을 올라 ‘아현동 쓰리룸’이란 종이가 붙은 집의 문을 열고 인사를 하니 집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아현동 쓰리룸’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밥을 먹는 장소였다.
전문 식당은 아니다. 20대 청년 세 명이 자신의 집에서 직접 밥을 짓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는 모임이었다. 낯선 이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서로 친분을 쌓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이다. 철학박사 강신주의 말처럼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입에 욱여 넣는 ‘사료’가 아닌,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며 밥을 먹는 ‘식사’를 하고 싶은 ‘나홀로족’의 열망이 빚은 새로운 모임이다.
그렇다고 품격 있는 만찬이 펼쳐진 건 아니었다. 이날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와 양푼비빔밥. 정확히 따지면 ‘대접’도 아니었다. “계란 부치면 되는 건가요?” ‘손님’으로 ‘아현동 쓰리룸’을 처음 찾은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부엌으로 가 프라이팬을 잡았다. 50㎡(15평)가 채 안 되는 집에 양푼비빔밥을 먹기 위해 모인 사람은 15명. 손님들은 밥상이 모자라 방 한 구석에 놓여져 있던 합판을 옮겨 ‘식탁’을 만들었다. 집주인들이 책상에서 빼온 대학전공서적들이 식탁의 네 다리가 됐다. 밥 먹는 것도 쉽진 않았다. 집주인은 밥을 두 번 했다. 밥통에 밥을 할 때 물을 적게 넣어 ‘생쌀’ 수준으로 밥이 설 익은 탓이다. 사내들은 기지를 발휘해 소주 반 병을 밥통에 넣어 다시 뜸을 들인 뒤 밥을 밥상에 내놨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밥통에 숟가락을 부딪혀 가며 비빔밥을 먹었다. 새로운 ‘식구’(食口)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8년 동안 집에 들어와 한 번도 ‘다녀왔습니다’란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부터 “혼자 밥 먹다 짜증 나 숟가락을 던진 적이 있다”는 말들이 밥상에서 오갔다.
이 모임을 이끈 ‘아현동 쓰리룸’의 주인은 김산, 김초원, 천휘재다. 대전에서 자라 음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사는 인디 음악인이다. 팀 이름은 ‘피터아저씨’로, 이들은 식사가 끝나면 또 다른 인디 음악인을 불러 작은 공연을 열었다. 1만원을 내면 식사와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홈 콘서트’이기도 했다. 세 청년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거실을 공개하며 밥상을 차리고 무대를 꾸리며 새 음반을 준비했다.
3년이 지나 2016년7월30일. 포크 밴드 피터아저씨는 첫 정규 앨범 ‘불청객’을 냈다. ‘아현동 쓰리룸’에 모여 살며 3년 동안 만든 노래 10곡을 실었다. 이들과 함께 목요일 저녁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지원군이 됐다. 팀에서 보컬과 기타 연주를 맡고 있는 천휘재는 18일 “앨범 작업비 마련을 위해 인터넷에서 소셜 펀딩으로 300만 원을 구했는데, 함께 밥을 먹으며 만난 분들이 특히 많은 도움을 줬다”고 고마워했다.
피터아저씨의 새 앨범 이름은 ‘불청객’이다. ‘청년 빈곤자’로 경제ㆍ사회적으로 ‘섬’ 같은 세 멤버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천휘재는 “우리가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 들어가 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사회 변화를 꿈꾸는 진보 세력도 아니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환영 받지 못하는 경계인 같다는 느낌이 들어 붙인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서로를 불청객 취급하는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안타까움도 깔려있다. 피터아저씨는 강남역에서 벌어진 한 여성의 억울한 사망 사건 등을 지켜보며 앨범 타이틀곡이기도 한 ‘불청객’을 썼다. ‘불청객’은 자신을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각성의 노래이기도 하다. ‘불청객’에서 피터아저씨는 “삶은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지네. 왜 사냐고 행복하냐고”라며 “대답은 많은데 내 것은 없네”라고 속삭인다. 명징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에 얹혀진 “내 것은 없네”란 대목이 특히 아리다.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 불청객처럼 찾아가 울림을 줬으면” 하는 게 세 청년의 바람이다.
피터아저씨에게 ‘불청객’은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은 ‘내 이름을 잊었네’에서 “출근시간 20분 전 대충 머리를 감고서 가방을 챙기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이름을 잊었네”라고 노래한다. 천휘재는 대학 졸업 후 4년 동안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 2013년 정규직을 포기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는 데도 돈은 쌓이지 않고, 자신마저 잃어가는 상실감을 견딜 수 없어서다. 결국 자발적 ‘프리터’(프리랜서+아르바이트)를 택한 그는 “적게 벌고 적게 일하고 여유 있게 살자”고 마음 먹고 인디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신부를 꿈꾸다 기타를 잡은 김산과 드러머 김초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세 인디 음악인에 현실의 무게는 버겁다. ‘불청객’에 실린 마지막 곡 ‘끝’을 듣다 보면 세 청년의 잡답이 나오는데, 천휘재가 “음악만 했으면 행복했을까?”란 말을 하자 다들 실소를 터트린다. ‘웃음의 맛’은 쓰디 쓰다. 자발적 ‘프리터’를 자처한 이들에 음악인으로서 삶이 지속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과 자조가 잔뜩 묻어 있어서다.
피터아저씨의 음악인으로서의 ‘꿈’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세 청년은 이달 정든 아현동 집을 떠나야 한다. 살던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서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거실이 있는 방 세 칸 짜리 집에 산다는 세 청년의 낭만도 끝났다. 집 주변에 작업 공간이자 카페 운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언뜻 가게’도 닫는다. 이사를 계기로 세 청년의 ‘셰어하우스’도 끝이다. 김산이 결혼을 해 살림을 따로 꾸렸다. 천휘재는 친동생과 함께 명륜동에 살 집을 찾았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지만 월세살이다. 그는 “새 집에서 같이 살 사람을 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월세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피터아저씨의 새 앨범 작업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는 불투명하단다. ‘아현동 쓰리룸’이 없어진다니. 문득 세 청년이 차린 서툰 집밥이 그리워졌다.
“기회가 된다면 명륜동 집에서도 집밥 모임을 해 볼까 싶어요. 그 모임을 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거든요. 지방에서 올라 와 서울에 지인이 없는 우리에겐 모두 고마운 분들이죠. 당장은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내년엔 ‘언뜻 가게’ 같은 가게를 다시 해 볼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진 않아요. 주거가 불안해 계속 어디론가 이동해야 한다는 게 심적으로 많이 피곤하더라고요.”(천휘재)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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