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열린 리우올림픽 육상종목 남자 100m 결승전. 이번에도 출발은 느렸다. 출발시반응 속도가 0.155초로 8명 중 7번째였다. 하지만 출발한 지 7초가 지났을 무렵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19일 열린 육상 남자 200m 결승전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출발은 늦었지만 가장 먼저 곡선주로를 빠져 나온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금메달 2개를 추가하는 순간이었다.
20일 열린 육상 남자 400m 계주 결승은 정점을 찍은 경기였다. 세 번째 주자에게서 배턴을 넘겨받은 볼트는 또 다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전인미답의 올림픽 3회 연속 3관왕 신화를 완성했다.
자메이카의 육상 종목 국가대표인 우사인 볼트(30)는 올해 리우올림픽에서 가장 주목 받은선수다. 세계 최초로 올림픽 남자 육상 100m, 200m, 400m 계주에서 3연패의 신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100m였다. 볼트는 결선에서 9초81을 기록하며 강력한 경쟁 상대인 미국의 저스틴 개틀린(34)을 0.08초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일 열린 200m 결선에서 그가 세운 우승 기록은 19초78. 당초 그는 강한 자신감을 보여 자신이 세운 세계 신기록 19초19를 깰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그는 20일 열린 남자 400m 계주에서 우승하며 세 차례 올림픽 육상 달리기에서 총 9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타고난 핏줄
볼트는 자메이카를 ‘육상 단거리 왕국’으로 만든 1등 공신이다. 하지만 볼트 이전에도 자메이카 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약물 사용이 적발돼 메달을 박탈 당한 캐나다 대표 벤 존슨,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100m에서 우승한 영국의 린포드 크리스티,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육상 100m 우승자인 캐나다의 도너반 베일리 등이 모두 자메이카 출신이다.
여러 연구 결과들은 자메이카 선수들이 단거리에 강한 이유를 유전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육 조직의 수축과 이완을 돕는 ‘ACTN3’유전자와 고농도 산소를 근육에 보내는 ‘ACE’ 유전자가 자메이카인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됐다. 볼트도 이런 ‘타고난’ 유전자를 물려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념을 박살내다
볼트는 타고 난 100m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200m와 400m 선수로 뛰었다. 100m를 뛰기에 덩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100m는 빠른 스타트를 통해 단시간 내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키가 크면 빠른 스타트를 할 수 없어 불리하다는 것이 세계 육상계의 상식이다.
이 때문에 볼트도 200m와 400m에 주력했다. 여기에는 1990년대 200m와 400m를 제패했던 육상 스타인 미국의 마이클 존슨 선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시작은 좋지 않았다. 볼트는 15세이던 2001년 헝가리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육상대회 200m 종목에 출전했다. 21초73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지만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예선 탈락했다.
그런데 이듬해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열린 주니어 대회 같은 종목에서 전년 기록을 1초 이상 단축하며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자메이카 고등학생 대회 200m와 400m 에서 각각 20초25, 45초35를 기록하며 2관왕에 올라 그는 200m 주자로 자리를 굳혀 갔다.
볼트의 올림픽 데뷔 무대는 2004년 아테네 대회였다. 당시 18세였던 그는 육상 200m에 참가했지만 21초05로 개인기록에 한참 미치지 못하며 예선 탈락했다.
그런 볼트가 달라진 것은 2005년 글렌 밀스 코치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 그는 400m를 포기하고 200m에 승부를 걸었다. 밀스 코치는 볼트의 약점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약점은 단거리 선수로 뛰기에 너무 큰 체구였다.
당시 100m 세계 챔피언이나 세계 기록 보유자들은 대부분 신장이 180cm대였다. 키 196cm, 체중 95kg의 볼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너무 크고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볼트는 척추가 ‘S자’ 모양으로 휜 척추측만증까지 갖고 있다. 척추가 굽은 탓에 어깨와 골반이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뛸 때마다 척추에 충격이 간다. 이는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하는 단거리 선수에게는 선수생활까지 단축시킬 만큼 치명적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밀스 코치는 볼트의 주법을 완전히 뜯어 고쳤다. 체구가 큰 만큼 무려 2.44m에 이르는 넓은 보폭을 적극 활용했다. 어깨와 골반의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달릴 때 팔을 더 많이 흔들도록 주문했다. 또 허리, 등, 배 부위의 근육을 강화해 척추에 전달되는 충격을 분산시켰다.
밀스 코치의 훈련은 2년 반 만에 볼트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볼트는 2007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0m 종목에 참가해 미국의 타이슨 게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일약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여기 그치지 않고 200m 정상에 오르기 위해 가장 큰 약점인 느린 출발을 보완하기 위해 훈련을 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100m 종목 출전이다. 100m는 200m 정상에 오르기 위한 연습 과정이었다.
그 결과 볼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첫 출전한 100m에서 당시 세계 기록인 9초69로 금메달을 딴 것이다. 200m에서도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했고 400m 계주에서 1위를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단거리에서 키 큰 선수는 우승하기 힘들다’는 세계 육상계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볼트의 신화는 계속됐다. 이듬해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9초58로 다시 세계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후 볼트는 부정출발로 실격당한 2011년 대구 대회를 제외하고 2013년 모스크바, 2015년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의 원래 주종목인 200m에서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100m에 출전해 9초63으로 2연패를 달성하며 단거리 정복자로서의 자리를 완벽하게 굳혔다.
스타의 자격
볼트는 스타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쇼맨십도 풍부하다. ‘10초 뛰고 10분 세리머니’라는 말처럼 그는 경기 직후 화려한 몸 동작으로 관중을 열광하게 만든다. 볼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며 “그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유쾌한 성격과 표정, 활달한 동작은 달리기 실력 못지 않게 팬을 늘리는 요인이다. 여기에 약물 복용 전력이나 별다른 추문도 없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볼트의 이런 매력을 눈여겨 봤다. 덕분에 각종 광고로 이어지는 그의 마케팅 가치는 무려 2억7700만 파운드(약 4000억원)를 넘는다는 분석이다. 이 가운데 볼트가 거둔 순수익이 6000만 달러(약 66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볼트의 다음
볼트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라며 “2017년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은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m 결승에서 1위로 들어온 뒤 "곡선주로에서 뛰기 힘들었다”며 “늙었다"고 말했다.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와 축구의 펠레처럼 최고 선수들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 뒤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번 올림픽 결선 전에 밝힌 그의 포부는 3관왕 3연패라는 대기록을 통해 달성된 셈이다.
볼트가 내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밝힌 만큼 앞으로 볼트의 뒤를 이을 육상 황제는 누가 될 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 그의 후계자가 그의 대기록을 뛰어 넘을지도 관심사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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