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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저음, 민첩한 고음…정명훈 지휘 빛났다

입력
2016.08.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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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두 번째인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 롯데콘서트홀이 19일 저녁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공식 개관했다. 연주회에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가 세계 초연됐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서울에서 두 번째인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 롯데콘서트홀이 19일 저녁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공식 개관했다. 연주회에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가 세계 초연됐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롯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다. 지난해 9월 개관 예정이었지만 공사 지연 등의 이유로 11개월이나 늦춰졌다. 그때는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덕분에 진은숙씨가 위촉작을 잘 마칠 수 있었다니 새옹지마인 셈 쳐도 될 것 같다. 2,036석의 롯데콘서트홀은 국내 최초의 빈야드(포도원) 스타일 홀이자 서울에서 두 번째 클래식 콘서트 전용홀이다. 1988년 예술의전당이 세워진 이후 28년만이다.

하지만 인구 1,000만의 메트로폴리탄에 클래식 콘서트 전용홀 2곳은 왜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자본의 논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클래식 문화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모종의 반감도 작용하는 듯하다.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괴롭혔던 지난해 사건 이후 클래식을 폄하하는 선동이 유행처럼 표출된 것에서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은 여러 화제를 낳았다. 그 중 하나는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재회이다. 바스티유에서의 마지막 날을 떠올리게 하는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이후 8개월. 예정된 앙코르인 최성환 ‘아리랑 환상곡’ 이후 단원들이 즉석으로 추가한 두 곡의 앙코르(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비제 ‘카르멘’ 서곡)에는 여전히 그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단원들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예전과 같은 익숙한 모습으로 함께 서 있는데도 지울 수 없는 어색함과 환희가 새로운 출발점을 점지해준다. 언제든 한국의 관현악단을 객원지휘할 수 있다는 정명훈의 말을 기억해두고 싶다.

정명훈 지휘자가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연주회 중 객석에서 앙코르 곡 헝가리안 무곡 연주를 듣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정명훈 지휘자가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연주회 중 객석에서 앙코르 곡 헝가리안 무곡 연주를 듣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했던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작품을 서울시향이 초연한 일이다. 진은숙의 음악은 리듬과 음색, 화음이라는 고전적인 요소에 집중하여 고도의 신음악부터 일반적인 청취 습관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신음악적인 측면은 ‘바이올린 협주곡’(2001)을 두고 한 그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면 “리게티에 대한 응답”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리고 원색적인 음향의 팔레트와 다층적인 복잡한 리듬이 건축과 같은 설계로 조직된다. “꿈의 건축물”(음악평론가 마르틴 데믈러)이나 “유동하는 소리 조각(彫刻)”(진은숙)이라는 표현이 이를 잘 대변한다.

그런데 성악 작품들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하나의 작품 안에 펼쳐지는 ‘양식의 혼재’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게 고민거리가 된다. 음악평론가 패트릭 한이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2005)를 두고 “그녀의 연구 과제”라고 말한 것도 이런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진은숙의 음악에는 200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그의 음악이 “특별한 문화적 함의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음악학자(폴 그리피스)도 있지만, 최근 진은숙은 “비유럽권 음악문화에 굉장한 친밀감을 느낀다”며 자신의 작품 속에서 동양의 이미지를 내비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까지 주류였던 반짝이는 음색의 세밀한 운동성보다는 전체적인 음향적 유동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소리 조각’의 이미지보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소리 모음’에 가깝다. 이는 진은숙의 빛과 공간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있는데, ‘빛의 공간’이라는 산스크리트어 제목의 ‘로카나’(2008)가 상징적이다.

롯데콘서트홀 개관 기념 초연작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빛이 비치는 별과 무한한 공간의 우주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점은 ‘로카나’의 연장선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양식의 혼재’보다는 ‘소리 모음’을 지향한다. 합창은 리듬으로 리듬을 상실시키고 특히 어린이 합창은 동양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유동적인 흐름에 집중한다. 그리고 합창과 함께 현악은 신비한 무중력의 소리 공간을 만들고, 별빛과 같이 반짝이는 관악기와 타악기의 화려한 음색은 제우스가 자신의 자식들을 하늘의 별자리로 들어 올리듯 소리 공간 곳곳에 오른다. 여기서 오르간은 절대자 ‘빛’의 의지를 전한다.

하지만 40분간 지속되는 무거운 긴장감은 진은숙 작품으로는 다소 낯설다. 작품 규모를 고려할 때 정서적 움직임의 폭이 기존 작품에 비해 좁아졌다고 느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작은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연 직후 그가 보인 눈물에는 공연에 대한 감격뿐 아니라 앞으로 자신의 길을 확인한 데 대한 기쁨도 담겨 있지 않았을까 싶다.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연주회에서 교향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 세계 초연 후 정명훈(왼쪽부터) 지휘자, 진은숙 작곡가, 황지희 소년합창단 지휘자,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 인사하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연주회에서 교향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 세계 초연 후 정명훈(왼쪽부터) 지휘자, 진은숙 작곡가, 황지희 소년합창단 지휘자,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 인사하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또 하나의 악기, 롯데콘서트홀은 저음을 많이 사용한 진은숙의 신작에 훌륭히 반응했다. 홀의 음향적 특징은 잔향이 길고 저음을 강하게 확산시키면서도 고음이 이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저음이 강력해지면 고음의 민첩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음색이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하기도 했는데, 정명훈의 노련한 지휘 덕에 다소 제어되었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과 특히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에서는 템포와 다이내믹을 적절히 조절하여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장점이 되도록 만들어냈다. 홀의 특성은 어느 면에서 로맨틱 오케스트라에 최적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여러 주목 받는 연주회가 예정되어있다. 레자르 플로리상부터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에 이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대중을 좇기보다는 대중을 이끄는 기획임을 확인하게 된다. 앞으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러한 기조가 유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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