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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신권 정치의 옹호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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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신권 정치의 옹호자가 아니다

입력
2016.08.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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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드라마 '정도전'의 한 장면. 고려 말 권신들의 횡포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꿈꾼다. 그런 그가 혁명 뒤 신권정치를 주장할 수 있었을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KBS드라마 '정도전'의 한 장면. 고려 말 권신들의 횡포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꿈꾼다. 그런 그가 혁명 뒤 신권정치를 주장할 수 있었을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선왕조의 설계자’라 불리는 정도전은 흔히 ‘신권(臣權) 정치’의 옹호자로 알려져 있다. 재상이 왕과 의논하는 방식으로 나랏일을 진행해 전제왕권을 견제하려 들었고, 이 때문에 왕권 강화를 노린 이방원에게 당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이 해석 뒤엔 ‘조선은 잔혹한 전제정치와 거리가 먼 민본주의였다’고 말하고픈 욕망,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민본주의를 현대의 의회주의나 민주주의에다 끌어다 대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이 달콤한 가능성 덕에 KBS 드라마 ‘용의 눈물’이 큰 인기를 얻었고, 같은 구도가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반복됐다.

그런데 고려말 권신(權臣)들이 부리는 횡포를 온 몸으로 확인했던 정도전이 집권하자마 다시 신권 중심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송재혁 고려대 박사(정치외교)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삼봉학 국제학술회의?정도전과 동아시아 신질서의 구축’에서 ‘정도전의 신질서 구상과 서경(書經)’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정도전의 기반은 ‘주례’의 ‘재상총재’가 아니라 ‘서경’의 ‘성왕’ 모델이었다는 얘기다.

역성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명분이다. 고려왕조를 고치는 게 아니라 갈아엎어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혼탁한 권신의 난립’이었다. 이인임, 임견미 등으로 상징되는 권신들을 척결했다는 명분은 조선왕조 개창 직후뿐 아니라 100년도 더 지난 9대왕 성종 때까지 계속 거론됐던 얘기다. 건국 직후엔 이 같은 논리가 강할 수 밖에 없다. 조선의 첫 과제는 당연하게도 ‘왕정의 정상화’이지 신권 강화일 수 없다는 얘기다.

SBS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왼쪽)과 이방원. 신권과 왕권의 대립이라는 갈등 구조는 사실일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SBS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왼쪽)과 이방원. 신권과 왕권의 대립이라는 갈등 구조는 사실일까.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도전의 입장도 매한가지였다. 1392년 이성계 즉위 뒤 그는 국가론, 재상론, 군주론에 각각 해당하는 ‘조선경국전’(1394년) ‘경제문감’(1395년) ‘경제문감별집’(1397년)을 잇달아 내놨다. 군주론을 다룬 ‘경제문감별집’이 나중에 나온 이유에 대해 정도전의 글을 모아둔 ‘삼봉집’서문에는 “삼봉이 처음 ‘경제문감’을 편찬할 때 상업(相業ㆍ재상의 일)부터 시작하고 군도(君道ㆍ왕의 도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조심스러워서 감히 언급하지 못한 것이리라”는 권근의 글이 있다. 신하가 왕의 일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조심스러우나 그럼에도 정치의 중심은 왕일 수 밖에 없기에 ‘경제문감별집’을 따로 냈다는 얘기다. 동시에 동아시아 왕조국가에서는 그 어떤 국가론과 재상론이든 간에 결국 가 닿을 곳은 군주론 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더구나 당대엔 명나라가 동아시아의 패자 자리를 확고히 해가고 있었다. 명은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홍무예제’와 같이 황제를 정점에 둔 일원적인 위계질서를 창출하고 그것을 국내 뿐 아니라 천하에 관철”하려던 중이었다. 명나라를 자주 드나들며 당대 국제정세에 밝았던 정도전이 이런 시대의 흐름을 몰랐을 리 없다. 그렇기에 ‘정도전=신권정치의 주창자’라는 널리 알려진 해석은 반박되어야 한다는 게 송 박사의 주장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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