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터널’을 한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로 ‘기레기’가 뜹니다. 피해자의 생사를 확인할 유일한 수단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고립된 심경을 집요하게 묻는 기자의 모습은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이상 재난영화를 보며 당시의 비극을 떠올리지 않기는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습니다. 기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오보와 선을 넘은 취재 방식 등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찢어놨던 당시 세월호 보도의 참상이 ‘터널’을 보는 내내 더 선명하게 떠올라 영화적 재미보다는 처연함이 앞섰습니다.
2년 여의 시간이 지난 현재 언론은 어떤 모습일까요. 세월호 인양작업을 비롯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을 둘러싼 갈등,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절규 등 현실은 2년 전과 딱히 달라진 게 없는데 유독 언론만 그때와 달리 차분해진 모습입니다. 유가족들에게는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이라 쓰기 망설여지지만 무관심이란 표현이 사실 정확한 듯 보입니다.
지난 20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기억교실이 안산교육청으로 이전됐습니다. 참사 발생 858일 만에 교정을 떠나는 희생학생들의 유품을 더듬으며 유가족들은 또 한번 가슴을 쳤습니다.
지상파방송 3사와 종합편성채널(종편) 4사 가운데 이날부터 이틀 동안 진행된 이전 작업을 메인뉴스로 다룬 곳은 종편 JTBC와 TV조선이 유일했습니다(TV조선은 이전을 둘러싼 일부 유가족들의 반대와 갈등을 부각해 보도했습니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이를 지면기사로 다룬 종합일간지 역시 본보를 비롯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정도였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소위 보수 매체는 한 컷의 사진기사로 이를 대신했습니다.
최근 세월호 관련 보도에 언론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감안하면 사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입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2주기 당시 양대 공영방송인 KBS, MBC는 특집 프로그램 편성 없이 추모 행사 스케치에 불과한 짤막한 보도로 ‘세월호 거리두기’의 모범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앞서 3월에 열린 세월호 참사 청문회, 세월호 특조위의 릴레이 단식 등도 이들에게는 관심 밖 이야기였습니다.
무서운 침묵입니다. 특조위의 조사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던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을 비판하며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추모 천막이 ‘피로도’를 느끼게 한다는 내용(동아일보 7월 28일자 ‘법 대신 농성 택한 세월호 특조위장’)으로 유가족의 상처를 깎아 내린 기자의 시선만큼이나 잔인하고 비겁한 침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종 여론에 촉수를 곤두세워야 하는 언론이 ‘도대체 언제까지 세월호냐’는 일각의 불만에는 반응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사소한 이슈라 판단될지라도 국민이 허락해준 전파와 소중한 지면 한 켠에 실어 국민들이 세월호 관련 소식을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참사 당시와 비교해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뭍으로 채 올라오지 못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고, 진상 규명을 외치는 광화문 천막의 현수막이 폭염 속에서 여전히 나부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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