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그 생각의 방향과 잠재적으로 진행 중인 내용의 해석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시간의 의미가 깃든 미완성이 그 본래적 성격인 그런 그림이다.”
예술인생 30년 동안 1만 장이 넘는 드로잉을 남긴 서용선(65) 작가는 자신의 노트에 드로잉을 이렇게 정의했다.
“임시용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그가 덧붙이듯 드로잉은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아이디어 도출 단계의 습작이면서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세상을 포착한 흔적이자 동시에 그 세상을 확장하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완성을 추구해야 할 의무나 이유가 없다는 것. 변화와 새로운 전개를 향한 가능성을 머금은 드로잉은, 불확정적이라 더욱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완(未完)의 미학을 추구하는 드로잉은 그래서 강력하다.
거침없는 선의 회화부터 설치, 공공미술 등으로 전방위 활동하고 있는 서용선 작가의 드로잉 700여 점을 공개하는 전시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이 10월 2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책과 전시를 통해 드로잉을 일부 공개한 적은 있지만 수백 점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년을 10여 년 앞둔 2008년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 둔 이후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에게 드로잉은 작품세계의 바탕이자 토대다.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레지던시 입주 초 우연히 앞에 놓여진 거울을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한 자화상 작품들은 대체로 정면을 강하게 응시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스로 “내부에 감춰진 불편함을 찾는 행위”라고 설명하듯 자화상은 세상과의 교감에 서툴렀던 서 작가 자신을 반영한다. 2007년 7월부터 9월까지 경기 양평에 거주하며 매일 기록했다는 자화상은 드로잉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자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스케치북과 펜을 늘 가지고 다닌다”는 그에게 서있는 모든 곳은 스튜디오가 된다. 흔하게 널린 팸플릿이나 과자 포장지도 드로잉에 적극 활용한다. “직접 보고 그리기도 하고, 영상 촬영했다가 나중에 페인팅으로 옮기기도 한다”는 그에게서 탁월한 기록가로서의 면모마저 느껴진다. 그는 파리, 오사카 등 익숙한 몇 군데 도시 중에서도 베를린을 “가장 작업하기 좋았던 곳”이라고 꼽으며 “(자신을 억누르는 듯한)도시 자체의 분위기나 한국 역사와의 공통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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