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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1) 시간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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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1) 시간의 인문학

입력
2016.08.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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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엄수라는 새로운 도덕률을 요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엄수라는 새로운 도덕률을 요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겐 기억에 남는 박물관이 있다. 스위스 르 로클 지역의 국제시계박물관이 그것이다. 이곳에서 난 시계가 모든 정밀 기계의 원형이라는 것과 서구의 삶 자체를 바꾼 놀라운 발명품이라는 점을 배웠다. 시계는 우리에게 수 세기를 아우르는 기술 공학의 역사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말해주는 사물이다. 스위스의 르 로클은 종교개혁 당시 프랑스의 종교박해를 피해 망명한 시계 기술자들을 수용하면서 19세기 후반 시계산업의 성지가 된다. 19세기 후반 대화재로 마을 전체가 전소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시계 생산에 특화된 산업단지로 재개발해서 시계산업의 토대를 쌓았다.

시계 박물관에서 본 산도즈 컬렉션은 경이로웠다. 제약회사 출신 가문의 아들인 산도즈란 사람이 평생 동안 모든 희귀한 시계들이었다. 향수병에 시계와 자동인형을 곁들인 1880년대의 시계며 음악이 울리는 상자 속에서 연주자들이 움직이며 시간을 알리는 시계 등 눈이 아찔했다. 그 중에서 문자판을 금으로 만들고 루이 15세 스타일로 채색한 시침과 코끼리 상아 위에 동정녀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장의 수태 통지를 받고 조용히 두 손을 가슴에 얹는 그림을 그려놓은 ‘수태고지’는 산도즈 컬렉션의 최고 명품이다.

재미있는 건 이곳의 4,000여 개 시계들을 보면 시대별로 시간을 표시하는 방법들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1700년경의 시계만 봐도 15분 단위로 분을 표시했지만 1740년경에 시계는 아라비아 숫자로 60분을 표시했다. 분침과 초침이 붙고 더 작은 단위의 표시로 시간을 계측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삶이 좀 더 촘촘해지고 치열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근대 이전의 시간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호흡하고 움직이는 농촌의 시간이었다. 중세 말 농촌의 시간과 다른 시간 체계가 태어난다. 시계와 시간표를 필요로 하는 근대적 시간의 체계였다. 근대적 시간의 탄생은 교회와 상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교회는 종교적 목적으로 시간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 기도를 비롯한 종교적 예식을 이에 맞추었다. 종소리로 표현되는 교회의 시간은 농촌의 시간 체계를 변화시켰다. 한편 상인의 시간은 장사와 고리 대금업, 노동 통제를 위해 사용했다. 노동 대가를 지불하고 이자를 받아내기 위한 시간 체계가 필요했던 것.

도시시계탑과 더불어 근대는 시작된다. 공공시계탑의 보급과 더불어 사람들은 시계에 익숙해졌다. 15세기 초반 태엽시계가 탄생한다. 태엽 발명으로 쉽게 운반 가능한 시계를 제작하게 되었고 이후 손목시계와 회중시계 같은 휴대용 시계 제작도 가능해졌다. 시계는 등장과 함께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다. 유럽 각 도시는 화려한 시계를 제작하기 위해 경쟁했고 휴대용 시계가 출현하자마자 왕과 귀족들 사이엔 정교한 시계 내부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는 게 유행이 되었다. 시계는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활동 시기를 서로 맞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시간에 무척 예민해졌고 시간 엄수는 필요를 넘어 미덕의 차원을 갖게 되었다.

16, 17세기를 거치며 시계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천문학자 로버트 도일은 ‘우주는 거대한 시계태엽장치’라고 주장했다. 1650년대 후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진자시계 제작에 성공하면서 정교한 시간 측정도 가능해지고 정밀과학 기술 전반이 산업화되는 계기가 된다. 이 사건을 가리켜 기술사학자 루이스 멈포드는 “근대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다”라고까지 주장한다. 특히 손목시계의 등장은 근대적 시간의 확대를 가속화한 계기였다.

16세기 프랑스의 시계 장인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로 몰려들면서 명품 시계 산업은 꽃을 피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기술을 위해 시계 장인들은 협력과 경쟁을 반복했다.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초정밀 구동 장치인 무브먼트, 중력에 의한 오차를 최소화시키는 투르비용, 시와 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부품의 움직임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스켈러튼, 달의 변화를 보여주는 문 페이즈, 윤달까지 계산해 날짜를 표기하는 퍼페츄얼 캘린더에 이르기까지 6세기에 이르는 시간을 통해 개발한 장인들의 시계 제작기술은 수공예 기술의 정상을 보여준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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