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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만드는 즐거움을

입력
2016.08.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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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교육실천모임의 작은 실험

아이들에게 뭔가 직접 만들면서 스스로 배우고 나누는 즐거움을 돌려주고 싶은 어른들이 메이커교육실천모임을 만들었다. 잘 알려진 메이커이기도 한 이지선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의 제안으로 작년 12월부터 메이커, 교사 등 20여 명이 원서와 번역서를 함께 공부하며 메이커교육을 고민하다가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메이커교육의 바람직한 모델을 찾기 위해 20일 과천과학관의 무한상상실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 20명을 대상으로 영 메이커 워크숍을 시작했다. 6주 동안 만들기 워크숍을 하고, 가을에 작은 전시를 열어 만든 것을 발표할 예정이다. 어른들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워크숍 규칙이다.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전부 아이들이 스스로 정하고 해결한다. 전시도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다.

첫 모임인 이날, 아이들은 저마다 만들 것을 정했다. 치아교정기를 낀 채 양치질을 깨끗이 할 수 있는 칫솔, 목소리로 조종하는 드론, 무엇이든 튀겨주는 튀김기계, 물 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수중 셀카봉…. 종이에 상상하는 모양을 그리고 필요한 재료를 적었다. 필요한 자료와 정보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뱀 로봇을 만들겠다는 초등학교 1학년 꼬마가 신이 나서 말했다.

자전거 체인에다가 바퀴랑 모터를 달면 돼요. 배터리는 어떻게 하지? 아, 뱀이니까 태양열전지가 좋겠다. 뱀로봇으로 도둑을 쫓을 거에요. 어떻게 하냐고요? 비밀인데. 음, 카멜레온처럼 숨어있다가 도둑 목을 콱 감아버리는 거에요. 하하.” 재미있는 뱀로봇이 태어날 모양이다.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 지켜보던 메이커 강석봉씨가 말했다. “방법만 조금 알려주면, 아이들 스스로 다 해요. 어른들이 간섭만 안 하면 돼요.” 천안에서 특수운반장비 회사를 운영하면서 메이커로 활동 중인 그는 어린 메이커들에게 ‘싸부’(사부)로 통한다. 누구나 와서 무엇이든 만들면서 놀 수 있는 메이커랜드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이날 워크숍을 진행한 디자이너 박주용씨는 아이 스스로 열어가는 미래를 강조했다.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앞으로 10년 뒤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혁신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죠. 어른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놔두세요. 그러면 스스로 길을 찾아낼 거에요.”

‘함께’ 만들며 ‘협력’을 배운다

메이커교육은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만들기를 통한 배움’이다.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손을 놀려 가슴으로 느끼고 구체적으로 깨닫는 과정이다. 놀면서 만들고 만들면서 배운다. 그리고 ‘함께’ 만든다. 손수 뭔가 만드는 DIY는 예전에는 혼자 놀기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 덕분에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성장한다.

메이커교육실천모임을 제안한 이지선 교수는 “메이커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들 수 있는) 장소와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메이커교육의 가장 큰 매력은 함께 만들기를 통한 공유와 협력”이라며 “서로 도와주려는 이타주의가 메이커정신”이라고 설명한다. 놀지도 못하고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입시에 치여 경쟁으로만 내몰리는 한국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커교육이 가능할까 싶지만, 격변하는 미래를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메이커교육이 필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메이커교육이 왜 중요할까. ‘메이커버스’라는 이름으로 찾아가는 3D프린팅 교육을 하는 스타트업 메이커스의 송철환 대표는 “남들이 만든 세상의 단순 사용자가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메이커버스는 지금까지 전국의 60여개 학교를 찾아갔고 300명 가까운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했다. 올해부터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진로 탐색 활동의 하나로 메이커교육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메이커버스의 올해 상반기 교사 연수는 6개 도시에서 20명씩 120명을 모집했는데, 800명이 신청했다. 1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도록 3D프린터 사용법보다 모델링 교육에 주력한다. 송 대표는 “3D프린터는 도구일 뿐이고, 상상하는 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융복합 교육 브랜드인 상상공장의 로봇 만들기 워크숍. 강아지 로봇을 만드는 중이다. 달꽃창작소 제공
디지털 융복합 교육 브랜드인 상상공장의 로봇 만들기 워크숍. 강아지 로봇을 만드는 중이다. 달꽃창작소 제공

놀면서 만들고 만들면서 배운다

만들기는 놀이다. 즐겁고 재미있어야 놀이다. 메이커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으로는 안 된다. 공교육이 입시에 매달려 창의교육이나 메이커교육에 소홀한 사이, 학교 바깥에서 대안적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술과 기술 융합교육 프로그램인 ‘상상공장’, 디지털아트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나비가 운영하는 ‘미디어아트 꿈의학교’도 그중 하나다. 국내 메이커 교육이 대부분 1회성 체험이나 키트 조립, 따라하기 방식인 것과 달리 스스로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창의성을 키우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상상공장은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고 교육하는 스타트업 ‘유쾌한 아이디어 성수동 공장’과 비영리 청소년 문화예술학교 ‘달꽃창작소’가 운영한다. 8월 초 상상공장은 로봇 만들기를 진행했다. 워크숍 장소인 서울 이태원의 달꽃창작소 작은 공간에 모인 중학생들은 이 곳의 귀염둥이 강아지 달군이 로봇을 만들었다. 달군이를 꼭 닮은 로봇과 달군이 여자친구 강아지가 닷새간의 워크숍에서 태어났다.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들고 뼈다귀를 갖다 대면 입을 벌린다. 동작을 제어하는 초소형 컴퓨터 아두이노, 자석처럼 붙였다 뗐다 하면서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리틀비츠를 활용했다. 토론하고 묻고 답하고 웃느라 떠들썩한 수업이었다.

아트센터나비가 진행하는 미디어아트 꿈의학교에 참여한 중학생이 미디어아트 워크숍을 하고 있다. 아트센터나비 제공
아트센터나비가 진행하는 미디어아트 꿈의학교에 참여한 중학생이 미디어아트 워크숍을 하고 있다. 아트센터나비 제공
어린이 메이커들의 공유 플랫폼 ‘플레이메이커’. LG상남도서관이 만든 사이트다.
어린이 메이커들의 공유 플랫폼 ‘플레이메이커’. LG상남도서관이 만든 사이트다.

아트센터나비의 미디어아트 꿈의 학교는 8개월 과정이다. 경기 고양시의 중학생 30명을 대상으로 5월에 시작했다. 자신의 꿈과 적성을 찾아내는 4주간의 탐색 활동을 거쳐 다음 26주 동안 만들기를 한다. 만들기 프로그램은 두 가지, 피지컬 컴퓨팅과 미디어아트다. 아이들은 가을 메이커 페스티벌에 나가 자신들이 만든 것을 전시하고, 또래 아이들을 위한 워크숍을 직접 진행할 예정이다. 꿈의학교 과정도 그렇지만, 워크숍도 어른이나 교사가 주도하는 게 아니고 아이들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고 장점이다.

어린이 메이커들이 만든 것을 올리고 공유하는 사이트도 생겼다. 올해 4월 오픈한 플레이메이커(www.playmaker.or.kr)는 LG상남도서관이 운영한다. 만들고 배우고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을 자랑하고, 만드는 법을 공유하는 디지털 광장이다.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한다는데

창의교육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각국 정부는 메이커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 나서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만들기를 통한 STEM 교육(과학, 기술, 공학, 수학 융합 교육)을 강조했고 메이커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미래의 기본 교양으로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전세계적 추세다. 한국도 내년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화된다. 암기과목이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가르칠 교사 등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벌써부터 코딩학원이 성업 중이다. 월 수십만원짜리 수업부터 수백만원짜리 캠프까지 등장했다. 공교육의 빈자리에서 자라난 부작용이다.

하지만 코딩은 인터넷만 뒤져도 배울 수 있다. 무료 교육 사이트가 많다. 친절하고 충실한 교육플랫폼으로 한국의 생활코딩(opentutorial.org)과 엔트리(play-entry.org), 미국의 코드닷오알지(code.org)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린이들이 코딩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미국 MIT 미디어랩이 개발한 ‘스크래치’ (scratch.mit.edu)가 대표적이다.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를 움직이며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 보면 간단한 게임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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