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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김영란 전 대법관은 왜 ‘김영란법’을 발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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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김영란 전 대법관은 왜 ‘김영란법’을 발의했나

입력
2016.08.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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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교수는 사법연수원생 시절 당시 검사였던 강지원 변호사를 만나 결혼했다. 김 교수는 강 변호사가 18대 대선에 출마하자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란 교수는 사법연수원생 시절 당시 검사였던 강지원 변호사를 만나 결혼했다. 김 교수는 강 변호사가 18대 대선에 출마하자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법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돼 왔던 수많은 부정 청탁을 바로잡자는 생각에서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있던 2012년 입법 발의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법무부는 “이미 형법상 처벌 근거(뇌물죄)가 존재하고 공무원과 일반인을 차별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법 실행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사람 사이에 정이 메마른다”며 관행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선 꼭 필요한 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신념은 무슨 생각에서 비롯된 걸까?

2004년 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된 후 첫 공개변론에서 심리를 하고 있고 있는 김영란 교수. 참여연대는 김 교수의 대법관 시절 주요 판결을 분석해 “여성 아동 청소년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고 환경권 노동권, 피고인의 방어권, 불치병 환자의 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여타 기본권 보호에도 강조점을 두는 판결들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4년 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된 후 첫 공개변론에서 심리를 하고 있고 있는 김영란 교수. 참여연대는 김 교수의 대법관 시절 주요 판결을 분석해 “여성 아동 청소년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고 환경권 노동권, 피고인의 방어권, 불치병 환자의 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여타 기본권 보호에도 강조점을 두는 판결들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결해야만 했던, 하지만 현실은 달랐던 판사의 민낯

김영란 교수는 법조계에서 ‘최초’란 수식어를 여러 개 가졌다. 2004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발탁됐다. 무려 8년 선배들을 건너 뛴 파격 인사를 통해서였다. 오래 전 1978년 여성 최초로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력도 있다. 사회에 물들지 않은 어린 나이에 몸담았다 목격한 법조계의 얼룩진 풍경은 김 교수에게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한 배경이 됐다.

김 교수는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대담을 엮어 2013년 펴낸 책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에서 김영란법을 생각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사법연수생으로 법원에 실무수습을 나갔을 때 판사들이 저녁을 사줬는데, 주머니가 얇았던 판사들이 잘 나가는 변호사들을 불러 밥을 사게 하더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배석판사가 된 후에도 부장판사들은 친한 변호사들에게 밥이며 차를 얻어 마셨다. 밥값만 따로 받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새내기 판사였던 김 교수 눈에는 배달 커피를 마시는 판사들의 모습부터 변호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찻값을 계산하는 관행, 고스톱이며 마작을 하고 골프를 즐기고 룸살롱에 출입하는 판사들이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문제의식은 법조계를 비롯한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장됐다. 부정청탁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전염성에 있다고 판단한 그는 애초에 부정청탁의 싹을 틔울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제 문제의식은, 착한 사람들도 발을 조금만 젖게 하면 금방 온몸을 다 적시게 된다는 데에서 출발했어요. 그걸 못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개인이 아닌 단체에 쥐어주는 돈, 돈이 아닌 상품권이나 선물 등 거절하기 힘든 대가들을 거리낌 없이 받으면서 발이 젖는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김영란법’은 사실 그가 판사 시절 초반부터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란법’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3월 김영란 교수가 법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대담집‘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문제는 권력형 부패, 거대한 부패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소한 부패는 대충 넘어가고 권력형 부패만 단속한다면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교사 등 특성에 맞는 행동강령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란법’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3월 김영란 교수가 법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대담집‘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문제는 권력형 부패, 거대한 부패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소한 부패는 대충 넘어가고 권력형 부패만 단속한다면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교사 등 특성에 맞는 행동강령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수 악당 처벌’이 아닌 ‘다수의 선한 사람’을 지키는 시스템

앞서 언급했듯 판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격은 ‘친한 변호사’ 즉 전관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수시로 밥값을 내 줄 수 있고 고스톱 판에 껴서 돈을 잃어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건 ‘전관’이란 친분 덕택이다. 평소에 금전 거래 등으로 돈독해진 관계는 필요한 순간이 되면 청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김 교수는 돈만 금지해선 안 되고 청탁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판사시절 일화를 이야기하며 청탁 자체가 근절돼야 하는 시스템을 강조했다. “한번은 학교 동기가 찾아와 사건 얘길 꺼내는 거에요. 그럴 거면 ‘차나 마시고 가라’고 하고 가져온 물건들도 돌려보냈어요. 그런데 선배나 상관이면 꼼짝없이 얘길 들어줘야 하잖아요. 듣고도 영향을 받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아예 듣지조차 못하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김영란법을 통해 구축하려는 시스템은 공직자나 언론인 등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이들을 옭아매려는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그들이 자칫 청탁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법으로 뇌물을 받는 사람을 100% 계도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선량한 공무원이 청탁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나쁜 물이 드는 것으로부터 지켜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구체적인 항목에서 불합리한 부분이 지적되고 있지만 시행하면서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다. 김영란법에서 가장 ‘중헌 것’은 ‘3ㆍ5ㆍ10 규칙’이 아니라 이 법이 발의된 근본적인 취지일 것이다. 김 교수의 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 청탁의 핵심이자, 그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저는 이 법이 누구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 청탁을 하면 이런 식으로 거절하라고 행동강령을 만드는 거에요. 일종의 규범이죠. 소수의 악당이 아니라 다수의 선한 사람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면, 그걸 통제하는 방법이 중요해요. 처벌 수위만 높여가지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거죠. 도덕적 규범을 머리에 떠올리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태도를 바꿀 수 있어요.”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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