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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퉁가서 못 써? 못 알아듣는 말이 아직 태반이네

입력
2016.08.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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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식 구형 전화기 바꿔보려

지인에 스마트폰 조언 구하니

손가락이 두꺼워 오류 난다고

콩죽 끓였대서 이장님댁 방문

뜨끈한 콩국수가 간도 안 맞아

분유에 국수 말아먹는 느낌

맛있는 척했더니 한 사발 더?

구순 할머니 만두 처음 맛보고

장례식장선 화투 대신 윷놀이…

육상선수와 내 몸매 차이만큼

삼천리 팔도 사는 게 다르구나

어느덧 벼 이삭들이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뜨거운 날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가을을 준비한 결과이다.
어느덧 벼 이삭들이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뜨거운 날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가을을 준비한 결과이다.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올림픽 막바지 TV에 나오는 육상 선수들의 몸은 조금 전 샤워하다가 거울로 봤던 어떤 살덩어리와 많이 달랐다. 팔 다리는 비현실적으로 길었고, 출발 직전 어깨 근육은 머리통만 했다. 한 손에 창을 들고 짐승을 향해 달리는 원시시대가 보이기도 했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들의 모습이었을 것 같았다.

남자의 몸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다. 성 정체성과는 관계 없다. 여자들한테 더 끌리는 건 여전하니까. 그저 충실하게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살들을 보다가, 촥촥 올라 붙고 툭툭 불거져 나온 그들의 근육과 선이 생소했을 뿐이다. 세포 별로 더위를 먹는 지 땀을 쏟아낸 피부는 탄력도 함께 빠져 나온 것 마냥 흐물거리고 색깔도 채도를 잃어가는 듯 하다.

기계도 더위를 먹나 보다. 며칠 전부터 휴대폰이 이상했다. 버튼을 눌러도 먹히질 않고, 전화벨이 울려도 받아지질 않았다. 한 번은 모임을 하던 중에 전화가 왔다. 얼른 받아서 조금 이따 전화하겠노라 말하려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폴더를 닫았다가 열어 보기도 하고, 있는 단추는 다 눌러도 벨소리만 점점 커졌다. 누가 한마디 했다. “거 받던지 끄든지.” 나도 중얼거렸다. “하려고 하는 게 그건데.” 이후 뒤 뚜껑 열고 배터리를 빼는데 불과 몇 초 안 걸렸지만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내게 집중했다. 분명 딴짓 하던 놈까지 합세해서 눈총을 쏴 댔고, 온 몸이 너덜대는 느낌이었다.

처음 구입한 스마트폰. 지금까지 쓰던 폴더폰의 용도를 고민 중이다.
처음 구입한 스마트폰. 지금까지 쓰던 폴더폰의 용도를 고민 중이다.

“형님 전화기 바꾸쇼. 노인네들 빼고 그런 전화기 쓰는 사람이 시방 어딨소. 보믄 서울사람덜이 이런 고집을 부리더마. 촌 사람들도 다 스마트 폰 쓰는디.” 옆에 있던 동생이 폴더 식 구형 전화기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내 휴대폰 때문에 남들이 짜증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스마트 폰이 싫은 건 아니었다. 필요한 줄 몰라서 안 썼다. 그리고 그렇잖아도 바꿀 생각이었다. 농사 짓다가 답답할 때가 많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한창 일하고 있을 어르신들에게 전화하는 대신 지식을 갖춘 분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 왔다.

알아보니 큰 부담 없이 바꿀 수는 있었다. 단지 기종이 고민이었다. 일단 크기가 작아야 하고 카메라가 좋았으면 하는 생각에 일반 기종보다 수입품에 더 마음이 갔다. 두 가지 다 써 본 D동생에게 전화해서 장단점을 물었다.

“형님은 손가락이 퉁가서 못 써.” 못 알아들었다. “퉁가? 퉁가가 뭐래?” D동생이 대답과 설명을 이었다. “퉁겁다 이말이요! 모르신대요? 뚜껍고 그렇다 아이다요. 그 폰이 예민해 갖고 형님 겉은 손가락 가지고는 꼐에속 오류 날거라.” 나쁜 놈, 내가 알고 보면 얼마나 섬세한 예민 덩어리인데. 그리고 ‘두껍고 그렇다’는 또 뭔 소린가. 뒤에 ‘그렇다’의 의미도 애매하고. 남태평양 섬나라에 갔어도 5년이면 말이 통할 텐데, 어째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아직 못 알아 듣는 말이 태반이다.

들판의 색이 변하고 있다. 조생종 벼는 노란 색을 띄고 이모작 논은 아직 푸르다. 농부들은 멀리서 색의 변화만 보고도 생육상태를 파악하고 병의 유무를 알아볼 수 있다.
들판의 색이 변하고 있다. 조생종 벼는 노란 색을 띄고 이모작 논은 아직 푸르다. 농부들은 멀리서 색의 변화만 보고도 생육상태를 파악하고 병의 유무를 알아볼 수 있다.

처음에 내려와서는 마을 사람들 얘기에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미소만 짓고 앉아 있었다. 억양이 세거나 한 게 아니라 단어가 달랐다. 몬당(능선, 봉우리), 천벤(강가), 이녁(당신, 자기), 주왕(아궁이 선반), 신간(마음), 도란장(돌아오는 장날), 정때(오후), 귄(귀티, 귀여움), 꼽꼽하다(촉촉하다) 등등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말만 다른 게 아니었다. 내려 온 지 얼마 안 돼서 동갑내기 친구가 술 한 잔 하던 중에 “자네 윷놀이나 하러 갈랑가?” 하길래 ‘정초도 아니고 단오도 아닌데 웬 윷?’ 하면서도 “구경이라도 하지 뭐” 따라 나섰더니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복도 한 켠에 사람들 모인 곳으로 다가가니 작은 멍석이 깔려있고 간장 종지에 손가락 마디 만한 나뭇조각들을 넣고 흔들다가 던졌다. 진한 술 냄새가 묻은 환호와 탄식이 이어졌다. 둘러보니 다른 곳에 모여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이곳에선 상갓집에서 화투판이 아닌 윷판을 벌인다. 체육대회에도 윷놀이가 항상 주종목이고 또 그 한 구석에는 판돈이 오가는 비공식 판이 진행된다. 화투처럼 밤 새서 윷놀이를 하기도 하고 이 것 역시 논밭 날려 먹은 사람을 만든다. 노인정에서 다리가 편찮으신 어르신들은 민화투나 뽕을 치시기도 하지만, 스쿼드 운동이 가능하고 펄쩍 뛸 힘이 있는 사람들은 윷판으로 모인다.

먹는 것도 사뭇 다르다. 내려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선선한 가을 저녁에 당시 이장님 댁에서 ‘콩죽’을 끓이셨다고 와서 먹으라고 하셨다. ‘콩죽은 어떻게 생겼을까’ 의아해 하며 상을 마주하니 콩국수였다. 이후로도 ‘죽’은 대개 국수였다. 냉면 그릇으로 한 사발을 주셨다. 특이한 점은 콩국물이 뜨끈했다. 별미일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소금을 찾으니 오봉댁어머니가 “간은 다 했구마요” 하셨다. 한 젓가락 입으로 넣는데 뭔가 달랐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간’은 설탕을 넣으셨다는 말씀이었다.

조금 힘들었다. 사실 점점 힘들었다. 따뜻한 분유에 국수를 말아먹는 느낌이었다. 최대한 티를 안 내고 먹으려고 했고, 다행히 티가 안 났나 보다.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어머니는 “원샌은 뭐든 잘 먹어서 좋아요. 아주 이뻐” 하시면서 한 그릇을 내 앞에 내려 놓으셨다. “엄니 저 배 부른데요” 어머니는 단호하셨다. “에이, 우리 이 양반도 세 그릇은 잡숫겄구마. 저기 많응 게 어여 더 드씨요.”

서울에 없는 것이 여기에 있기도 하고 있는 것이 없기도 하다. 귀농 첫 해 설 연휴를 서울에서 보내고 집에서 싸 준 만두를 끓여 앞 집 할머니들을 모셨다. 아내가 “입에 맞으세요?” 여쭈니 구순의 할머니가 답하셨다. “생전 첨 먹어 보는 거라.” 의아해 하니 말씀을 이으셨다. “꼭 떡 맹키로 생겼는디 고기가 들어가 맛있구마.”

우리가 먹어왔던 음식을 삼천리 팔도에서 모두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류였다. 사실 만두도 이북 음식이니 남도까지 내려오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나 보다. 이 곳에서는 설날 ‘닭장떡국’을 먹는다. 쇠고기 대신 닭고기가 아니라 닭고기를 잘게 장조림처럼 조리해서 떡국에 넣어 간을 맞춰 먹는다. 추석 송편도 없다. 타 지역 문화가 섞이면서 가끔 맛을 보기는 하지만 송편 먹어본 적 없다는 사람도 많다. 대신 수수팥떡을 만들고, 여름에는 술 맛 나는 기정 떡을 좋아한다.

김치찌개 모른다는 어르신들도 있다. 여름에도 팥죽(팥 칼국수)을 즐기고, 잔치에는 도토리묵이 빠지면 안 된다. 한 동생은 어렸을 때 서울에 올라가서 부대찌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첨엔 못 묵을 음식 같습디다.” 이제야 물론 읍내 식당에서 김치찌개 부대찌개 만두전골 다 만날 수 있지만, 5일장 아니면 읍에 나올 일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아직도 낯선 음식들이다.

먹거리 말고도 특이한 점은 많다. 자녀 결혼식이 타 지역에서 있으면 일주일 전에 읍내 식당에서 반드시 피로연을 마련하고, 칠순이든 팔순이든 마을회관을 빌려 베푸는 잔치는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 자녀와 친지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저녁 한 끼 대접하는 개념이다. 칠순 주인공이 손님들에게 술을 따르고, 동네 어르신에게 “자네도 이제 나이 좀 먹었구마. 건강하시게” 덕담을 듣는다.

가뭄과 더위를 견뎌낸 들깻잎이 벌레의 공격을 받아 형체를 잃고 있다. 웬만한 친환경 약제로는 벌레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
가뭄과 더위를 견뎌낸 들깻잎이 벌레의 공격을 받아 형체를 잃고 있다. 웬만한 친환경 약제로는 벌레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

이곳의 모든 택시는 콜택시다. 콜 요금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읍으로 가는 빈 택시를 잡아 타면 버스요금만 내면 된다. 무전 시스템이 잘 돼 있어 분실물을 찾기도 용이하다. 한 번은 간전댁할머니가 지갑을 택시에 두고 내리셨다기에 읍으로 쫓아갔다. 아무 기사님을 붙잡고 얘기하니 무전기를 빼들고 메시지를 반복했다. “20분 전 터미널에서 사림마을 입구까지 어머니 모시고 가신 분, 뒷좌석 확인 하시고 연락바람!” 20분 만에 해결됐다.

아직도 내가 볼 때는 구례 전체가 시골인데 이곳 나름의 도농 구분이 살아있다. 읍에 사는 사람들이 면 단위에 사는 사람들 보고 “촌놈”이라고 하고, 면에서는 읍에 있는 중학교 보내면서 “사람은 대처로 나가야 써” 하신다. 어머니들은 대개 말씀하실 때 “멍충해 갖고 내가 멀 알간디……” 하는 자학성 문구로 말씀을 시작하시고, 반면에 아버님들은 “그거 처음 시작헌 게 나여”식의 자찬성 말씀을 먼저 하신다.

가장 큰 다른 점은 따로 있다. 첫 콩 농사 수확을 갈무리 할 때 쯤, 간전댁할머니가 낮은 음성으로 뭐라고 하셨다. “돈을 사믄 좋겠구마.” 잘 못 알아들어서 다시 여쭤봤다. “뭘 산다구요 할머니?” 웃으시면서 다시 말씀하셨다. “선재네 먹을 만큼 제허고, 돈 살 만큼 되면 좋겠다구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장에 내다 팔 만큼 콩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콩을 팔아 돈을 받아 오는 것을 ‘돈을 산다’고 하신 거다. 돈을 산다…… ‘돈? 그까짓 거 없으면 말고 필요하면 사오면 되지 뭐’ 이런 거 아닐까. 어쩌면 가장 정확한 표현 같다.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도랑에 떨어진 감들. 앞으로 한 달 반은 견뎌야 하는데 하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도랑에 떨어진 감들. 앞으로 한 달 반은 견뎌야 하는데 하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D동생의 말을 참고해서 국산 전화기로 정했다. 수입품을 권하던 판매점 사장에게도 손가락 얘기를 했더니 잠시 손을 보고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했다. 사람을 두 번 죽인다. 전화기를 등록하는 동안 가게 TV는 올림픽 하이라이트를 보여줬다. 금메달 딴 선수들의 경기 장면과 인터뷰가 반복해서 나왔다. 혼잣말을 했다. “저 사람들은 금메달 따서 연금도 받고 조오캤다.” 사장이 들었나 보다. “형님이나 쟤네들이 비슷하지 않으까요? 쟈들 운동하는 게 농사보다 쉬운 것 같지는 않고, 연금 100만원 받아야 그걸로 먹고 살기는 쉽지 않고. 달라 보여도 다 비슷헌 거 같아요.” 도를 절에서만 닦는 건 아닌가 보다.

금메달리스트나 나나 다 비슷한 처지이고, 그들의 근육도 먹고 살려다 보니 생긴 흔적이니 부러워할 건 없겠다. 그래도 이왕이면 저 사람들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늦었을까? 모를 일이다. 헬스클럽이라 생각하고 호미 긁기 200회 다섯 세트, 예초기질 30분씩 네 세트, 뭐 이렇게 하다 보면 잔 근육도 생기고 괜히 웃통 벗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아니다. 애써 남 좋은 일 하면 뭐하나. 어차피 살다 보면 다 비슷해 지는 걸. 그냥 지금처럼 동양적(?)인 곡선으로 밋밋하고 조신하게 사는 게 낫지. 씨름 선수도 선수고 스모 선수도 선수다. 더우니 별 생각을 다한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그고구마 밭과 땅콩 밭 사이 고랑을 맸다. 호미질이 운동 효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노동의 후유증만 남기는 듯 하다.
그고구마 밭과 땅콩 밭 사이 고랑을 맸다. 호미질이 운동 효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노동의 후유증만 남기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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