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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현대차 노동조합의 선택

입력
2016.08.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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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현대자동차 노사가 2016년 임금협약에 ‘잠정’ 합의했다. 합의의 핵심은 회사의 임금피크제 확대 요구 철회와 노동조합의 임금 양보로 요약되지만,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잠정합의안에 의하면 임금은 5만8,000원 인상되며, 성과금 350%와 격려금 350만원 그리고 주식 10주가 지급된다. 무엇보다 기본급 인상을 호봉승급 형태로 수용해 임금인상의 구조적 비용부담을 완화 한 점, 개인연금 계정의 회사 기여분을 50% 인상해 노령화에 대비한 점 등은 변화를 수용한 전향적 선택으로 읽힌다. 최근의 임금인상 수준을 고려하면 노동조합이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셈인데, 계속되는 저성장과 판매부진 등이 이러한 전략적 결정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이러한 결정에 싸늘하게 퇴짜를 놓았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사정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한 것이 중요한 이유일 테지만 동의 부정의 핵심 원인은 소위 ‘현장조직’들이 매우 체계적으로 부결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판에 기회 될 때 한 푼이라도 더 받자는 계산을 했을 것이고 현장조직들은 이러한 셈을 간파하는 데 능란했다. 인구학적 특성상 조합원들이 미래의 기회보다 현재의 가치에 더 민감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었으니 교섭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결론은 예측이 어렵다.

노동조합의 입장도 현장조직의 처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파이의 분배를 두고 노사가 경쟁을 지속하기에는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 등 자원 수출국의 경기 침체가 지속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경기회복 속도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부채확대 및 과잉설비 등 구조적 리스크로 경제의 경착륙까지 예견되는 상황이다. 그 결과 지난해 현대ㆍ기아차의 수출은 4대 수출 주력지역에서 모두 감소(15.7%)했으며, 생산규모는 438만대까지 줄었다. 466만대로 최대치를 기록했던 2011년 대비 28만대가 감소한 셈이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보호무역 물결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올해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이 反자유무역일 정도로 자국 시장과 일자리 보호는 정치적 좌우를 넘어서는 공통의 아젠다가 되었다. 영국도 브렉시트라는 초강수를 선택해 경제공동체 EU에서 이탈함으로써 보호 인프라를 구축했다. 한때 자유무역의 선봉이자 철학적 기반이었던 영미의 이러한 변신은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이러한 추세로 인해 글로벌 무역장벽은 훨씬 높아졌다. 각국 정부는 비관세 장벽을 확대하는 한편 세이프가드 등을 통한 무역구제조치 등의 방법으로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불황과 보호무역이 최근 경제의 화두가 되고 있는 셈인데 그 결과는 생산위축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과 무역 분쟁을 회피하기 위한 자본의 현지 이동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10년간 국내외 생산 비중의 극적인 역전을 경험한 현대ㆍ기아차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예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도요타는 일본인이 선호하는 직장이지만 급여를 거의 올리지 않는다. 소비 주도형 경기 부양을 목표로 기본급 인상을 강하게 호소한 아베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최근 도요타의 기본급은 쥐꼬리만큼 올랐다. 이러한 임금인상 자제의 핵심적 이유는 국내 산업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협력업체 급여 수준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 악화는 부품 불량을 초래해 완성차의 품질 문제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2016년 임금협상 테이블에 앉은 현대차 교섭위원들 머릿속에는 이러저러한 조건을 고려한 고차원 방정식의 사슬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것이다. 현 집행부도 현장조직 출신이니 교섭결과에 대한 여러 조직의 반대를 예측했을 것이다. 리더십의 위기를 감수하면서도 어려운 선택을 한 셈인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 보인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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