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밀려 한때 폐장 위기
상인들 커뮤니티서 아이템 개발
‘1냥당 500원’ 전용 화폐 만들어
재미 더하자 관광객 찾는 명소로
27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통인시장. 길이 300m의 시장골목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연인, 외국인 관광객 등이 북적대면서 활기가 넘쳤다. 입구에는 ‘엽전’을 사기 위한 줄이 30m 넘게 이어지는 진풍경도 빚어졌다. 이곳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색다른 이벤트 ‘도시락카페’를 체험하려는 방문객들이다. 엽전을 구매한 이들은 빈 플라스틱 도시락을 들고 시장 안쪽으로 잰 걸음을 옮겼다.
대형마트에 밀려 침체기를 맞은 전통시장이 독특한 이벤트와 재미로 활로를 찾고 있다. 전통화폐에서 착안한 ‘엽전’, ‘도시락카페’아이템을 개발한 통인시장은 젊은 층이 몰리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경복궁 서쪽 ‘서촌’에 위치한 통인시장은 한국 전쟁 이후 이 지역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느 재래시장처럼 1990년대부터 유동인구가 급감해 침체의 길을 걷게 됐다. 점포 수가 줄어 시장이 한때 폐장 직전까지 몰리자 상인들이 움직였다. 부랴부랴 시장 커뮤니티를 만들고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도시락카페(2012년 1월)’ 조성이다. 시장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푸드코트를 벤치마킹해 시장 내부에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도록 1냥당 500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장 전용 화폐 ‘엽전’을 만들어 재미를 더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시장 고유의 분위기를 지키며 재미를 살리니 고객들이 저절로 찾아왔다. 도시락카페를 개점한 2012년 연간 방문객이 5만명을 넘은 데 이어, 2013년 9만5,000명, 2014년 17만명, 지난해에는 20만 명이 다녀갔다.
심계순 통인시장 상인회 사무국장은 “화폐로 먹고 싶은 반찬을 소량씩 사는 방식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 주민 특성과 먹거리 점포가 많은 시장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며 “시장 음식을 저렴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보니 점심시간마다 인근 직장인이 몰렸고 반응이 좋아 참여하는 가게가 늘면서 어느 순간 통인시장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통인시장 상인회에 소속된 점포 78개 중 도시락 카페 가맹점은 24곳. 구입한 엽전으로 떡갈비, 전, 잡채, 계란말이 등 제대로 된 반찬부터 통인시장의 명물인 ‘기름떡볶이’같은 유명 분식까지 취향대로 골라 나만의 도시락을 만들 수 있다. 떡갈비는 1개가 엽전 1냥, 기름떡볶이 1인분은 엽전 2냥, 잡채 1인분은 엽전 2냥에 해당한다. 엽전을 10냥만 구입해도 한끼 식사로는 든든하다.
점심때가 되자 120석 규모의 도시락카페는 이미 만석이었다. 자녀와 함께 카페를 찾은 김지선(43)씨는 “맛도 맛이지만 주머니에 엽전을 넣고 다니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면서 “어른들은 옛 재래시장을 추억할 수 있고 젊은 세대는 한국 고유의 시장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만족해했다.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는 매주 화~일요일 오전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고, 엽전 판매는 오후 4시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매달 셋째주 일요일은 휴무다.
글ㆍ사진=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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