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토요일 새벽입니다. 최윤필 기자가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가만한 당신’과 정희진 선생님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정희진의 어떤 메모’를 읽는 시간이거든요. 저는 딸만 둘 있는 아빠로서 또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는 남편으로서 기본적으로 여인의 삶과 시각에 관심이 많지요. 그래서인지 두 선생님의 글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최윤필 기자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배신감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죠. 어떻게 남자가 이런 평화로운 시각에서 비롯된 고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여태 최윤필 기자가 당연히 여성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 글을 읽을 때면 내 딸들이 지금보다는 더 좋은 세상에서 건강한 여인으로, 명랑한 시민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와 힘을 얻지요. 토요일 새벽이 어찌나 좋은지 한 주일의 시작이 토요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마침 지난 3일 토요일에는 두 선생님이 모두 인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최윤필 기자는 인도 카스트 바깥의 천민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로 썼던 인도의 소설가 마하스웨타 데비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그녀는 지난 7월 28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물론 글을 읽기 전에는 그녀의 삶과 작품을 알지 못했지요. 다행히 ‘곡쟁이들’이 김석희 선생님 번역으로 나와 있다고 하니 읽어 보려고 합니다.
정희진 선생님은 인도 환경학자 반다나 시바의 책 ‘물전쟁’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반다나 시바는 핵물리학자 출신으로 서구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깨닫고는 생태 운동에 투신한 활동가로 환경, 여성인권, 국제문제에 대해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인도를 잘 모릅니다. 단지 느낌만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저는 인도의 강과 물 문제에 대해 심각한 위협을 느낍니다. 거기 살지도 않으면서 말이지요. 2009년 오스카상을 휩쓸었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물 걱정을 했습니다. 인도 영화인들은 영국인이 제작한 이 영화가 인도의 현실을 왜곡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인도 빈민가의 삶을 비추면서 서양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고 꼬집었죠. 그러면서 인도는 핵 선진국이며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라고 항변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뭄바이를 흐르는 더러운 강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반다나 시바가 말한 대로 물은 인간 삶 자체이고 모든 문제에 걸쳐 있습니다. 물을 통제하는 세력은 인류의 생명과 지구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이명박 정부 시절의 모토였던 ‘녹색성장’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물전쟁’을 소개하신 것은 ‘녹조라테’라는 표현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거의 ‘잔디 구장’ 수준인 낙동강 사진을 보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낙동강 녹조의 심각성을 보시고 물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신 것이겠지요.
왜 녹조가 위험할까요. 물의 표면을 녹조가 덮으면 햇빛이 차단되고 광합성이 줄어들면서 용존산소량(DO)이 줄어들고 물속의 생물들이 죽게 되지요. DO는 숫자가 클수록 물의 상태가 좋은 겁니다. 또 녹조 현상이 인체에 크게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독소가 있는 남조류가 많은 경우 구토와 복통을 일으키고 간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지요. 부족한 산소뿐만 아니라 독소 또한 문제입니다.
낙동강도 문제지만 인도의 갠지스강의 문제는 차원이 다릅니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라는 게 있습니다. 숫자가 크면 클수록 물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BOD가 8ppm 이상이면 가장 더러운 물인 5급수로 지정하고 10ppm 이상이면 급수 외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힌두교 순례자들이 목욕하는 바라나시 인근 강물의 BOD는 20~50ppm에 이릅니다. 이미 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도 매일 새벽 6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에서 몸을 씻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강에서 말입니다. 심지어 마시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인도 사망자의 5%는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합니다. 오죽하면 인도의 힌두교 승려 수천 명이 갠지스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유량을 늘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정부를 위협하기까지 했을까요.
저는 정희진 선생님께서 칼럼에서 짧게 소개한 갠지스강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갠지스는 다른 강처럼 정화 능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세균을 죽여 부패를 방지하는 광물질로 가득 차 있다. 갠지스에서는 콜레라균이 3~5시간 안에 죽는다. 때문에 콜레라 희생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주민의 시체가 버려지고 수천 명이 목욕하는 강물을 힌두교도인들은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는 힌두교인들의 확신에 놀랐는데 선생님은 제가 놀랄 줄 어떻게 아셨는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사실이냐고? 사실이다.” 이런 확신의 근거는 과학자들이 제공했더군요. 맥길 대학의 유명한 세균학자 해리슨, 프랑스 의사 헤랄, 영국 의사 넬슨 등이 1930년대에 했던 실험의 결과를 반다나 시바가 별 의심 없이 인용했고, 선생님은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소개했으며, 한겨레신문 데스크도 별 의심 없이 지면에 실은 것이지요.
정희진 선생님, 과학자 말 너무 믿지 마세요. 4대강 사업을 하면 수질이 좋아진다고 주장한 과학자와 공학자들도 많았습니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는 게 바로 과학적인 태도입니다.
정희진 선생님, 좋은 말 하는 사람도 너무 믿지 마세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지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결국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증언을 물이 전해준다는 내용입니다. 메시지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다 거짓입니다. 자연은 우리 상식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자연이거든요. 또 토요일을 기다립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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