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힙합이 국내에 상륙한 지 20여 년 만에 주류 음악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대중화 과정에서 쌓아온 노력과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는 MC(래퍼)들도 생겨나고 있다.
자이언티, 지코를 사랑하지만 주석, 피타입을 모르는 새내기 힙합팬을 위해 준비했다. 여기, 새로운 라임(운율)과 플로우(흐름)를 개발하며 힙합의 발전을 끌어간 MC들을 소개한다.
힙합 듀오 리쌍 길이 제 2의 방송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올해 Mnet '쇼미더머니 5', '언프리티 랩스타'에 얼굴을 비추더니 9월 22일 방송 예정인 '슈퍼스타K 2016'에도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2014년 음주운전으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 MBC '무한도전'에서 예능인 길의 모습을 보여왔다면, 이제 본연의 역할로 돌아온 모양새다.
버라이어티 예능이 아닌 음악 프로그램으로 노선을 튼 이유가 뭘까. '쇼미더머니 5'의 심사위원으로 등장했을 당시 길의 복귀를 문제 삼는 여론은 거의 없었다. "복귀했다고 사과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그 스스로 자세를 낮추기도 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무시할 수 없다. 길의 음악적 역량에 의구심이 없으니 심사위원 발탁에 별다른 구설이 없는 것이다.
SBS '런닝맨'에 출연하는 리쌍의 개리도 비슷하다. 매 회 몸 개그로 웃음을 주지만 하잘 것없이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 리쌍의 히트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망가지는 예능인의 이면에 '음유시인'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 1억원 빚내고 만든 앨범, 인생을 바꾸다
길과 개리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그룹 엑스틴의 멤버로 영입되면서 처음 만났다. 사실 개리는 댄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1996년 5인조 댄스그룹 스머프로 가수가 됐다. 엑스틴의 객원 멤버였던 이들은 1집 활동을 마친 후 힙합그룹 허니패밀리에 나란히 들어갔다.
허니패밀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 이주노가 결성한 아이돌 그룹이다. 1집 앨범의 타이틀곡 '남자이야기', '랩교', '우리 같이 해요' 등이 인기를 끌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개리와 길은 활동 중간 허니패밀리의 멤버 디기리와 '리쌈 트리오'라는 팀을 꾸려 '풍류가'란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리쌍의 시초였다.
허니패밀리가 휴식기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의기투합했다. 2002년 공식적으로 리쌍을 결성하고 길의 지인에게 1억원을 빌려 정규 1집 앨범을 냈다. 개리가 작곡한 타이틀곡 'Rush'는 엠넷 KM 뮤직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힙합음악상을 수상했다. 이 같은 성공에는 객원보컬로 참여한 가수 정인의 역할이 컸다. 당시 정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독특한 창법이 리쌍의 음악 색깔과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1집은 개리가 작곡에 적극 참여했으나 2집부터 주로 작곡은 길이, 작사는 개리가 맡았다. 2집까지 정인과 협업하며 독자적인 색을 구축했으나, 정인이 기존 그룹 지플라 활동에 집중하면서 차기 객원 보컬을 물색해야 했다. 정인은 5집부터 다시 리쌍의 피처링을 맡았다.
정인의 빈 자리는 가수 알리가 채웠다. 알리가 참여한 3집 타이틀곡 '내가 웃는게 아니야'와 BMK가 피처링한 '광대' 등이 각종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리쌍은 대중 힙합을 지향하는 그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4집 '발레리노', 6집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우리 지금 만나' 등이 중독성 강한 후렴구와 개성있는 보컬의 힘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6집 이후 리쌍은 예능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길은 MBC '무한도전', 개리는 SBS '런닝맨'의 고정 멤버로 활동했다.
2. 방송 하차 부른 논란
예능으로 대중과 친밀해진 만큼 처신도 더 신중해야 했다. 2012년 리쌍이 '무한도전' 측과 함께 기획한 '슈퍼7 콘서트'가 비싼 가격 논란에 휘말리면서 탈이 났다. 두 사람은 콘서트를 취소하고 출연 중인 방송에 하차하겠다 발표했다. 그러나 팬들의 복귀 요청에 1주일 만에 하차를 철회하고 예능 활동을 이어갔다.
구사일생했으나 길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2014년 그의 음주운전이 문제가 됐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에서 500m 정도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다. 길은 '무한도전'을 하차한 후 2년간 방송을 쉬었다.
최근엔 리쌍이 소유한 건물의 세입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0년 11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건물을 구입한 리쌍은 세입자에게 가게를 비워달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1년 뒤 세입자의 주차장 사용을 허락하면서 갈등이 해소되는 듯했으나, 세입자가 리쌍에게 주차장 점포의 용도 변경을 요청하면서 다시 갈등이 일었다.
세입자가 리쌍을 고소하고, 리쌍이 맞고소를 내는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그 사이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세입자는 법원의 퇴거 명령에도 불응했다. 결국 지난달 리쌍은 해당 가게에 대한 강제 철거를 진행했다. 리쌍이 '갑질'을 한 것인지, 세입자가 '을질'을 한 것인지를 두고 아직까지 여론은 분분하다.
3. 개리는 박치? 길은 랩 안하는 래퍼?
리쌍의 곡이 사랑 받는 데는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의 힘이 크지만, 개리 특유의 엇박자 랩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말을 하듯 매끄럽게 흘러가는 그의 래핑은 곡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고 가사의 집중도를 높인다.
엇박자 랩은 그가 박치였기 때문에 탄생한 기술이다. 초보래퍼의 어설픈 실력이 독보적인 기법으로 자리잡았다. 2009년 개리는 MBC '놀러와'에 출연해 "한 때 박치에 가사도 쓸 줄 모르는 데다 외모도 안 돼, 참여하던 힙합 모임에서 내쫓겼다"며 스스로 박치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길은 리쌍의 후렴구 보컬 부분을 소화해 래퍼라 생각 안 하는 이들이 많지만, 리쌍 데뷔 전엔 개리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엑스틴, 허니패밀리로 활동할 당시 랩을 선보였지만, 리쌍 정규 1집 앨범 이후 보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발매한 솔로 앨범에서 힙합 요소를 배제한 곡으로 리쌍과 또 다른 음악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
● 허니패밀리 '남자이야기'
● 정규 1집 'Rush'
● 정규 2집 '리쌍 부르쓰'
● 정규 3집 '광대'
● 정규 3집 '내가 웃는게 아니야'
● 정규 4집 '발레리노'
● 정규 6집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 정규 7집 'TV를 껐네'
● 정규 8집 '겸손은 힘들어'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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