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사진) 한진그룹 회장이 사재 400억원을 내 놓기로 한 것은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사실 한진해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인한 후폭풍이 국내는 물론 세계 해상물류를 마비시키고 있는데다, 채권단에 이어 정부까지 대주주를 1차 책임자로 지목하며 조 회장은 궁지에 몰렸다. 한진해운이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황에서 대주주로서의 법적인 의무는 없다 하더라도 자칫 한진해운 침몰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떠 안을 수 있다는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진그룹이 해상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1,000억원 중 조 회장이 사재로 충당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400억원이다. 한진해운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신청한 지난 4월부터 끊임없이 거론된 대주주 사재 출연이 결국 5개월 만에 현실화한 셈이다. 한진그룹은 지난달 25일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의 마지막 회의에서도 조 회장의 사재 출연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금액이나 시기는 못 박지 않았다. 당시 채권단은 “부족 자금이 발생하면 지원한다는데, 구체적이지 않고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조 회장과 자녀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일가가 보유한 상장ㆍ비상장 계열사 주식 가치는 4,146억원이다. 한진해운을 지원할 400억원은 일가 주식자산의 10%에 해당하는 만큼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회장 사재를 비롯한 1,000억원은 회수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하역 정상화를 위해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해운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사재출연을 한다면 400억원 수준이 유력할 것으로 점치고 있었다. 앞서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300억원을 내놓은 점, 한진해운이 현대상선 보다 규모가 큰 점 등을 감안한 액수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이 어떤 방법으로 400억원을 조달할 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한진해운 자산인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과 대여금 채권을 담보로 대한항공이 600억원을 지원하는 것도 법원 승인이 필요하지만 사전 협의는 전혀 없었다. 정부와 채권단의 압박, 항만 연관 중소기업들의 비명에 사면초가에 처하자 급하게 지원책을 마련했다는 방증이다.
업계에서는 한진그룹이 자체적으로 1,000억원을 내놓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법정관리 전 채권단에 제안한 한진그룹의 최종안은 대한항공 유상증자를 통한 4,000억원에, 사재 출연을 포함한 그룹 계열사의 추가지원액 1,000억원을 합쳐 5,000억원이었다. 이미 1,000억원은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이하를 지원한다면 한진그룹의 진정성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다고 그 이상을 내놓는다면 법정관리 전에 내놓지 않아 결국 물류대란을 초래했다는 역풍을 맞게 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 하기 위해 고민 끝에 자체 1,000억원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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