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가로수가 목도리를 두르고 털장갑을 꼈다. 마음 따뜻해지는 풍경은 한편으론 가로수가 겪은 수난의 역설이다.
사실 이 도시에서 가로수로 산다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묵묵히 선 가로수에게 양심불량이 가하는 해코지도 일상이 됐다. 빨랫줄을 걸자고 가로수에 대못을 박고 밑동에 굵은 쇠사슬을 둘러 개인 자전거 보관소로 쓰기 일쑤다. 무자비하게 감은 철사줄이 몸통에 깊은 상처를 내면 누군가 그 곳에 담배꽁초를 후벼 꺼버린다. 온갖 몹쓸 짓에도 항의 한 번 없는 가로수를 우리는 ‘그러려니’하며 지나쳐 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 누군가 걸어 둔 목도리와 장갑 한 쌍이 그 많은 상처를 감싸고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가식적인 이벤트 보다 포근한 마음이 절실한 계절이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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