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 소속의 20~30대 학생연수생(학연생)들이 최저임금(월 126여만원) 이하의 ‘열정페이’로 삶을 꾸려가고 있는 현실이 처음 공개됐다. 정부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현장 중심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2013년 학연생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는 뒷짐만 지고 있다.
8일 한국일보와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동으로 조사한 전국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실태 조사(2015년 말 기준)에 따르면, 출연연의 연구 인력 1만8,528명은 정규직, 비정규직ㆍ계약직, 그리고 학연생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이공계 석ㆍ박사 과정 이상인 학연생은 4,028명(21.7%)이다. 그러나 이들은 근로계약서 작성도 없이 출연연의 정식 연구 용역 등에 사실상 전일제로 동원되면서 ‘을(乙)’도 아닌 ‘병(丙)’의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학연생의 급여가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출연연은 학연생들이 업무는 정식 연구원처럼 하면서도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세전(稅前) 평균 연봉 1,800여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과 출연연이 갹출하는 운영비 등을 빼면 실제로 학연생의 실수령액(연수장려금)은 월 120만원에 불과했다. 2016년 최저월급(시급 6,030원 기준)이 126만원 선인 점과 비교하면,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한 소득조차 보장받지 못한 셈이다.
일부 출연연은 명문화 된 규정이 없는 점을 악용, 학연생에게 평균 주 60시간 이상 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겹친 피로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진 학연생들의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발생한 출연연 내 인명 사고 3건 중 1건의 피해자는 학연생이었다. 출연연의 이 같은 행태는 일반 기업 연구소들이 학연생과 비슷한 경력의 연구 인력에 대해 노동 기본권을 명확히 보장하는 것과 비교된다.
학연생들은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지만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 특히 일반 기업 연구소가 전무한 기초과학 계열의 학연생은 출연연 취업이 국내에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라 눈치만 보고 있다. 출연연에서의 성적과 평판이 취업이나 경력 관리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모품처럼 대우받는 학연생들 상당수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비상식적인 처우가 우수 과학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학연생들의 실태는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이들을 제외한 정규직, 비정규직, 계약직 연구원의 근로 현황에 대해서만 자료를 발표해 왔다. 결국 기초과학 연구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학연생들이 처한 현실은 이공계에 대한 무관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문미옥 의원은 국가가 발주한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이나 단체장은 학연생과 근로계약을 의무적으로 맺도록 하는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이달 중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학생연수생이란
일반 대학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대규모 국가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상주하며 해당 과제에 참여해 실험하고 논문을 쓰는 연구원 겸 학생이다. 이를 활성화 하기 위해 2003년 약 30개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를 설립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UST에 입학하면 연구기관에서 수업과 연구를 병행하며 석사나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다. 현재 학생연수생 대부분은 UST나 일반 대학 소속의 학연협동 연수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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