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4일, 개강을 앞둔 이화여자대학교는 중앙도서관의 심야 개방을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다. 학교에서 24시간 운영하던 지하 1층 자유열람실을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는 운영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심야시간의 낮은 이용률을 고려해 효율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학습권 침해라며 반대했던 학생들은 효율적 운영을 비용 절감으로 이해했다. 당시 학교 측에 항의 전화를 걸었던 학생 오 모(23)씨는 “결국 전기세와 경비 인력 인건비 등을 절약해보겠다는 것”이라며 “도서관 24시간 개방은 학생들에게 밤 늦은 시간에도 남아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주장했다. 졸업생 김 모(26)씨도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자주 밤샘 공부를 했다”며 “학교가 학습 공간 마저 없애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 2학기에 시범 운영 후 올해 1학기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학생들의 반발이 커서 무산됐다. 이대 도서관의 기획홍보실 관계자는 “292석의 지하 1층 자유열람실 이용도가 특정 기간에 하루 평균 1.13명으로 매우 저조해 심야 제한 방안을 검토했으나 총학생회 의견을 받아들여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대에서 도서관 운영을 제한하려던 시도는 요즘 대학의 변화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학교의 이 같은 변화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비용 절감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육의 질이 떨어지거나 학생들이 받아야 할 혜택이 줄어드는 일이 빈번해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일부 대학들의 경우 학생들의 복지를 줄인 비용을 엉뚱한 곳에 투자해 돈을 낭비한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사소한 학생 복지, 뭣이 중헌디?
지난해 3월, 연세대학교는 서울 신촌캠퍼스와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를 잇는 셔틀버스를 축소 운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촌발 19회, 송도발 18회였던 셔틀버스 운행횟수가 3월 이후 각각 14회로 줄었다. 그 바람에 신촌발 오전 8시 30분, 오후 1시 30분과 6시 30분, 송도발 오전 8시 30분, 오후 1시 30분과 4시 배차 시간대가 사라져 낮 시간대 배차간격이 크게 늘어났고, 야간 시간대 차량 편성도 대폭 줄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8월 연세대와 광역버스회사인 청룡교통의 계약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으로 종료되면서 학생들이 그동안 무료로 지급받았던 M6724번 버스 탑승권도 사라졌다. 따라서 학생들은 셔틀버스가 없는 시간대에 신촌과 송도를 오가려면 왕복 5,200원의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
연세대의 이 같은 결정은 비용 때문이다. 청룡교통을 대신해 외부 버스를 투입하자니 비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당초에는 학교측이 광역버스 교통비의 절반 가량 부담하는 부분 유료화를 검토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다.
셔틀버스 단축과 광역버스비 증가는 동아리, 학회 등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기숙사 교육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연세춘추’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촌캠과 송도 국제캠의 분리로 학생자치활동 참여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9%(234명)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이유로 ‘오랜 이동 시간’과 ‘비싼 교통비’, ‘부족한 셔틀버스’등을 꼽았다.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생활하는 양 모(22)씨는 “교통이 불편해 신촌에서 열리는 개강파티, 총회 등의 학교 행사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다”며 “다른 친구들도 오후 7시에 있는 회의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동아리 가입을 포기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 모(20)씨도 “셔틀버스가 너무 부족해서 전날 오후 2시에 할 수 있는 셔틀버스 예약이 수강신청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렵다”며 “예약에 실패하는 날이 많은데 그러면 하루 일정이 꼬여 불편이 크다”고 설명했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몇 년 째 학생들의 운동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약학대학 및 연구개발센터 설립을 위해 기존의 대운동장을 주차공간으로 바꾸면서 학생들의 운동 공간이 사라졌다. 학교 측은 4년간 공사해 새로 대운동장을 마련했지만 국제규격의 축구장 크기에도 미치지 못해 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마저도 당초 계획한 잔디 운동장이 아닌 마사토 운동장이다.
그 바람에 넓은 공간이 필요한 체육교육학과 수업은 아예 사라졌고 총장배 체육대회 등은 많은 비용을 들여 외부에서 하고 있다. 운동관련 동아리 학생들도 주말에만 중대부중 운동장을 빌려 활동을 하고 있다. 최 모(25)씨는 “학생들이 오랜 기간 운동 공간 부족때문에 불편이 큰데 학교 측은 무책임하게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모(20)씨도 “공간 마련이 힘들면 주변 체육시설과 계약이라도 맺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학생들에게 운동장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학교 측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공간 부족 때문에 당장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중앙대 시설팀 관계자는 “서울캠퍼스에 운동시설을 마련할 공간이 없다”며 “농구장을 새로 갖추면서 기존 쓰레기 집하장이 사라져 교내에 쓰레기 둘 곳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색한 교육 투자 … 학생은 뒷전
학교의 비용 절감은 시설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민감한 장학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여러 대학들이 장학금을 축소해 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대는 복지장학금 비중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신입생인 15학번부터 ‘우수2’성적 장학금을 폐지했다. 이 장학금은 직전 학기에 과목 낙제 없이 기준 평점을 넘은 학생들에게 등록금 감면 형식으로 지급했다. 이대 학생지원팀 관계자는 “성적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복지장학금 비중을 늘려 보다 균등한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의무적으로 장학금 중 일정비율 이상을 가계곤란 장학금으로 지급하도록 한 정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의 불만이 만만찮다. 사회과학대 15학번인 한 모(21)씨는 “단과대에서 상위 6% 안에 들지 못하면 성적 장학금이 아예 없다”며 “평점 4점대여도 상위 6%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장학금 변동은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학교 측은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서강대도 2014년 1학기부터 성적장학금 지급액을 등록금의 30~60% 수준에서 약 17% 수준으로 축소해 학생들의 불만이 컸다. 고려대는 지난해 성적장학금을 아예 없앴고 서울대, 한양대는 성적장학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실험실습비와 기자재 구입비 또한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출액 대비 실험실습비 비중은 2010년 1%에서 2014년 0.9%, 기자재구입비 비중은 2010년 2.1%에서 2014년 1.6%로 감소했다. 고려대 공과대학의 정 모(22)씨는 “실험실습비 때문에 공대 등록금이 문과보다 100만원 가량 많은데도 학기당 실험이 5번 뿐”이라며 “일부 실험은 채 10분에 불과할 정도로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난이 심해 교육여건 개선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학의 지출규모가 2010년 20조8,675억원에서 2014년 23조7,212억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등록금 수입이 1,238억원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강사 숫자를 줄이는 것도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학들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시간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시간 강사 규모를 대대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법에 따르면 대학은 내년부터 시간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 임용을 의무화 해야 한다. 안정적인 고용계약 등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이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비용 상승을 우려해 오히려 시간강사를 더 줄이고 있다.
서울 주요대학 중 전임교원 대비 시간강사 비율이 230.9%로 가장 높은 성신여대는 2학기 들어 전공, 교양 강의가 대폭 축소돼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이 모(24)씨는 “이번 학기에 들을 만한 수업이 크게 줄어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라며 “심지어 전공 수업마저 수업을 개설하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경희대는 지난 1월 교양 과목을 맡은 시간강사 45명을 일괄 해고해 물의를 빚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시간강사법 시행 전 나타나는 각종 부작용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만큼 적립금 투자 등을 통해 시간강사들을 전임교원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록금의 수상한 용처 … 교비 남용 심각
일부 대학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 운영에 필요한 법정부담전입금까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법정부담전임금은 대학을 소유한 학교법인이 교수와 교직원들의 건강보험료 지급 등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사학진흥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326개 사립대 중 법정부담전입금을 한 푼도 내지 않거나 10%미만으로 납부한 대학이 116곳이다. 교육부는 고의적으로 법정부담전입금을 내지 않는 대학들에게 행정 처벌을 내리고 있으나 별 효과가 없다. 대학생 최 모(23)씨는 “학교측이 등록금으로 법정부담전입금까지 충당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내야할 비용까지 전가하는 날강도 같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학들은 부동산 투자를 늘리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사립대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는 여의도 면적의 약 150배다.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만 약 1조원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박경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사립대 기본 재산 현황’에 따르면 사립대가 소유한 토지의 절반 이상은 교육과 직접 관련이 없는 수익용 토지다. 평가액이 6조원에 이르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수익률이 1%에 그치고 있다. 모 대학 시설관리팀 관계자는 “모 대학은 학교와 멀리 떨어진 지방의 임야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며 “그런 땅을 사는 대신 장학금 등 학생 복지를 위해 투자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위한 투자 … 교육부 관리?감독 강화 필요
대학이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학생들의 복지 혜택을 줄이거나 엉뚱한 투자를 벌이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수익용 토지의 처분 및 전환, 교비회계에서 부동산 관련 지출 축소를 권고해 왔다.
하지만 3년에 한번씩 종합감사를 받는 국립대와 달리 사립대의 종합감사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정진후 전 의원(정의당)이 발표한 ‘사립대학 감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체 사립대 중 약 44% 가량이 설립 이래 종합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
교육부는 허술한 종합감사의 대안으로 2004년 사립대 회계감사를 도입했으나 마찬가지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회계 감사대상인 4년대 사립대학의 34%가량이 단 한번도 감사를 받지 않았다.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등 주요 사립대는 종합감사와 회계감사를 모두 받지 않았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회계감사 대상을 조금씩 늘리고 있으나 부적절한 투자나 횡령이 줄어든 것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의문”이라며 “대학에서 발생한 금전적 문제는 단지 회계뿐 아니라 종합 감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한설이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