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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이 다르다…제주 두 개의 달 이야기

입력
2016.09.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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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네이처지(誌)에는 수천만 년 전 지구는 두 개의 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두 개의 달이 충돌해서 현재의 달이 생겨났다는 학설이 발표됐다. 가설에 의하면 40억 년 전 소위 ‘대충돌’이라고 불리는 폭발이 있었고 이 때 두 개의 달이 생겨났다. 인류가 현재 보는 달의 3분이 1 크기인 자그마한 달이 지구와 또 다른 달 사이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달이 어느 순간 충돌해 오늘날의 달이 됐다는 얘기다.

백록담 옆으로 떠오르는 달
백록담 옆으로 떠오르는 달

제주에서 두 개의 달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다. 천지개벽 신화라 불리는 ‘천지왕 본풀이’에 보면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도에서 심방(무당)들이 굿을 할 때는 ‘초감제’라 하여 하늘이 열린 후 이 굿을 하게 되기까지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의식이 있다. 천지왕 본풀이에 전하는 천지개벽 과정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천지가 서로 맞붙어 혼합되고 있었는데,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의 머리가 자방(子方)으로 열리고,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방(丑方)으로 열려 천지가 금이 나 개벽되었다. 이때 하늘에서는 청(靑)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해 만물이 생겨났는데, 먼저 여러 별이 생기고, 다음에 해와 달이 둘씩이나 생겨났다. 이 때문에 낮에는 더워서 살 수 없고, 밤에는 추워서 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에 하늘의 천지왕은 첫째 아들인 대별왕에게 이승을, 작은 아들인 소별왕에게는 저승을 각각 맡아서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승을 탐낸 아우는 수수께끼와 꽃 가꾸기 등의 내기를 하여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고, 속임수로 이겨서 이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승에 오고 보니 해와 달이 둘씩이나 뜨고, 나무와 짐승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분이 없고, 인간사회에도 싸움과 불화, 도둑 등이 들끓고 있었다.

제주의 달
제주의 달
제주시의 월대 표석
제주시의 월대 표석
제주시 해안동 대별왕당
제주시 해안동 대별왕당

이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는 소별왕은 형에게 이승의 질서를 바로잡아 달라고 간청, 대별왕은 활로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없애 하나씩만 남겼다. 또 송피가루를 뿌려 짐승의 혀를 저리게 하여 나무와 짐승들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무게를 달아 그 경중으로 귀신과 인간을 구분 지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대강의 질서는 잡혔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그대로 나둬 지배와 피지배, 선과 악 등의 무질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형보다 능력이 모자란 동생이 욕심을 부려 이승을 차지한 까닭에 오늘날의 불평등과 각종 사회문제로 고생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마치 아담이 에덴동산의 사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오늘날 인간세계의 고난이 시작되었다는 서양의 신화와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제주도를 이야기할 때 그 시작을 설문대할망 신화에서 찾는다. 설문대할망이라는 거대한 여신이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 할망은 힘이 얼마나 셌는지 삽으로 흙을 7번 파서 던지니 한라산이 만들어지고, 치마에 흙을 담아 옮기는 과정에서 치마의 찢어진 틈으로 떨어진 흙덩어리가 오름이라고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곧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우주의 생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곳이 제주다. 내용만큼이나 그 이야기를 전하는 제주 사람들의 스케일을 한번 보라. 이 지구상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한 이 땅 제주도에서 이처럼 웅대한 천지개벽신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아니한가. 제주를 신화의 땅, 민속의 보고라 불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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