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거래’ 직거래 콘셉트
믿을 수 있는 친환경 먹거리 제공
하루 1만명 방문… 4년간 급성장
명동ㆍ양재ㆍ어린이대공원 등
혜화 이후 도심곳곳에 장 들어서
한가위를 앞둔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은 무더운 날씨에도 장터가 한창이었다. 하얀 가림막 아래에는 농부들이 직접 기른 계절 채소, 정성스레 길러온 과일과 곡식 등 친환경 먹거리가 가득했다. 여느 농산물 직거래 시장과 다름없는 듯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면면이 새로웠다. 호박 하나를 팔아도 흔히 볼 수 있는 호박이 아닌 관상용 호박, 국수호박, 가리비 호박을 파는 식이다. 박스가 아닌 소쿠리에 담긴 호박은 양도 많지 않았다. 슬로우푸드로 분류되는 각종 장아찌와 피클, 드레싱과 제철 과일로 만든 샐러드, 음료 등 먹거리도 대형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빛깔이 한참 달랐다. 4년째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혜화’의 풍경이다.
‘마르쉐@’는 ‘~에서 열리는 시장’이란 뜻이다. 시장이란 뜻의 프랑스어 ‘마르쉐(marche)’에 장소 앞에 붙는 영어 전치사 ‘at(@)’을 더했다. 어디든 장터를 열고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독특한 시장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간다. 한 시민단체를 통해 식재료와 요리에 관심이 많은 농부와 요리사, 예술가를 비롯한 여러 시민이 모여 ‘마르쉐친구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했고, 4개월여 친환경 먹을 거리에 대해 고민하다 2012년 10월 대학로에 첫 마르쉐를 개장했다. ‘이 곳에 가면 믿을 수 있고 신선한 먹거리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4년 만에 하루 평균 1만 명이 방문하는 ‘한국형 파머스마켓’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로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마르쉐@’뒤에 지역명을 붙여 혜화동뿐만 아니라 명동, 양재, 어린이대공원 등 도심 곳곳에 시장이 만들어졌다. 보통 오후 2,3시를 넘어가면 대부분의 상품이 동이 날 정도로 성황이다.
마르쉐의 가장 큰 특징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야기’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얼굴 있는 거래’를 컨셉트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식재료만 판매한다는 원칙이다. 대화가 활발해 질 수 있도록 포장과 설명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현수막 등 홍보물도 최소화했다. 마르쉐의 기획자 이보은(48)씨는 “판매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과정이 투명하다는 뜻이고 시장에서는 그 어떤 인증마크보다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농부와 요리사가 합심해 만든 장터인 만큼 이들간 정보 교류도 활발하다. 장이 설 때마다 판매자들이 모여 계절에 맞춘 식재료를 준비하고, 커뮤니티를 통해 먹거리를 재배하고 요리하는 법을 나눈다. 이날 정성껏 키운 토종쌀을 가지고 온 ‘우보농장’의 이근이(49) 농부는 “소규모로 토종품종을 재배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다른 농부, 요리사들과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며 매달 배울 수 있다”면서 “시장을 매개로 모두가 저마다의 분야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재료 판매에 요리를 곁들인 것도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이다. 다만 일회용 식기를 사용하지 않아 식기를 준비해 와야 한다. 미처 못 가져온 이들을 위해선 그릇과 젓가락을 보증금을 받고 빌려 준다. 덕분에 파장 후에도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마르쉐@혜화는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에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마당에서 열린다. 타 지역에서도 비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자세한 정보는 ‘마르쉐@ 홈페이지(marcheat.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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