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웃음이 주는 효과는 크다. 그러나 스포츠 경기에서만큼은 웃음은 금기 사항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적에게 보이는 웃음은 나약함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포커 페이스’로 무장하고 경기에 나선다.
하지만 여자 골프에서는 미소가 오히려 상대를 옥죄는 강한 무기가 되고 있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대회 최다 언더파 기록을 경신한 전인지(22ㆍ하이트진로)와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에리야 쭈타누깐(21ㆍ태국),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19ㆍ뉴질랜드)는 긴장감이 심한 경기 중에도 쉼 없이 미소를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웃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은 결코 웃음을 아끼지 않는다.
골프에서도 미소가 보편적이지는 않다. 한때 세계 여자골프를 평정했던 안니카 소렌스탐(46ㆍ스웨덴)이나 카리 웹(42ㆍ호주), 박세리(39ㆍ하나금융그룹)는 경기도중 잘 웃지 않았다. 한때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청야니(27ㆍ대만)와 크리스티 커(39ㆍ미국), 스테이시 루이스(31ㆍ미국) 등도 경기 중 잘 웃지 않는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인비(28ㆍKB금융그룹)는 극단적인 포커 페이스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전인지와 쭈타누깐 등은 경기가 잘 풀릴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왜 항상 미소를 지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의 미소는 ‘억지 웃음’이다. 감정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샷을 하고 나서 기분 좋은 골퍼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억지 웃음이라고 해도 골프에서 미소가 아주 중요한 무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승 문턱에서 여러 차례 주저 앉으며 ‘새가슴’으로 평가절하됐던 쭈타누깐은 억지 웃음을 바탕으로 강철 멘탈의 골퍼로 변모했다. 전인지도 2년 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클래식 컷 탈락 후 더 잘 웃기 시작했다. 미스 샷을 해도 미소를 지으며 한 단계 성장했다.
골프는 멘탈 스포츠다. 보통 100명이 넘는 선수들과 우승 경쟁을 벌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우승도 할 수 있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종목이라 감정 통제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골프에서 ‘긍정의 힘’을 강조한다. 타이거 우즈는 “실수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것들은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홀과 멀어지게 할 것”이라며 샷을 앞둔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경계했다. 샷 이전에 실수부터 먼저 생각한다면 최상의 샷을 구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전인지는 미소를 바탕으로 긍정의 힘을 끌어내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의 한 골프 전문 칼럼니스트 역시 전인지의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의 원동력으로 웃음을 꼽았다.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가장 많이 웃은 선수는 전인지였다. 온화한 미소가 메이저 골프 사상 최소타의 대기록을 달성한 힘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인지의 미소를 ‘올해의 미소(The year of smile)’였다”고 평가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