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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프로’정부의 ‘아마추어’ 구조조정

입력
2016.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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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열린 한진해운 관련 물류대책 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영석 해양수산부장관, 오른쪽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오대근기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열린 한진해운 관련 물류대책 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영석 해양수산부장관, 오른쪽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오대근기자

적어도 구조조정에 관한 한 우리 정부와 공무원들이 ‘프로’라고 믿었다. 그냥 막연한 신뢰가 아니었다. 구조조정이 보편적 경제용어로 등장하게 된 외환위기 이후 20년을 돌이켜보면, 정부는 전문가라는 얘기를 들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앞이 캄캄했던 환란 시절 5개 은행을 하루 아침에 폐쇄시키면서도, 뱅크런이나 거래기업 집단도산 없이 진행했다. 자동차 전자 조선 건설 금융 등 한국의 핵심산업을 아우르고 있던 거대 대우그룹을 공중 분해시키면서도, 산업기반과 경쟁력을 지켜냈다. 구조조정은 보통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다루는 작업에 비유되는데 정부는 정교했고 치밀했으며 노련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벤치마킹 대상의 ‘구조조정 모범국’으로까지 대접받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진해운의 물류대란은 더욱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구조조정의 숱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정부가, 훨씬 더 큰 재벌그룹도 해체시켜봤던 공무원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미숙하고 무책임할까. 프로는커녕,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해운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운항 차질은 자명한 일.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용선료 하역료 유류대금을 낼 현금이 없으니 배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화물수송도 함께 중단된다는 뜻이다. 배에 물건을 선적한 수출업체들의 피해, 나아가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는 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나라 최대 국적선사가 이런 나락의 길로 접어들게 됐는데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물류대란이 현실화된 한참 뒤에야 관계부처 회의가 소집됐지만, 이미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 구조조정 때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2중 3중의 보호막과 플랜B, C까지 만들었던 정부가 한진해운에 대해선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사실 지금까지 정부의 구조조정방식은 딱 한가지였다. 채권단에 떠넘기기. 처음엔 자율협약이란 이름으로, 그게 힘들어지면 워크아웃이란 형태로, 대형 부실기업은 모조리 채권단에 떠맡겼고 채권단은 추가로 돈을 넣어 일단 죽어가는 기업을 연명시켰다. 그러다 이 기업을 팔 수 있으면 다행이고, 안되면 그냥 계속 끌어안았다. 채권단은 주로 산업은행이었는데, 떠넘기기→추가자금지원→매각시도→계속 끌어안기 과정을 거친 대표적인 기업이 대우조선이다. 어쨌든 기업은 살았고, 생산과 고용이 유지됐으니 구조조정은 성공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만약 대우조선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 한진해운도 이 오랜 룰대로 처리됐을 것이다. 법정관리에 가지 않고 출자전환을 통해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을 것이고, 채권단 신규자금지원을 통해 정상적으로 배를 운항하고 있었을 게다. 물류대란도 당연히 없었을 터이고.

하지만 이 떠넘기기 방식을 쓸 수 없게 되자 정부는 ‘멘붕’이 됐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가는 순간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물류의 문제, 수출산업 전반과 대외신인도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악재가 됐는데도 정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특히 해운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수출 및 물류 소관부처인 산업통산자원부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이 자신들의 일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모양새다. 하기야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는 모든 걸 채권단에 떠맡겼던 탓에 정부 내에서조차 ‘구조조정=금융위원회 업무’로 각인됐고 다른 부처들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심지어 경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마저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컨트롤타워 기능을 작동해야 할 시점이란 사실 자체를 망각한 듯하다. 물류대란 대책미비에 대해 “한진해운측이 자료를 주지 않아서”라고 답했다는데, 과연 이게 책임있는 정부 입에서 나올 얘기인가 싶다.

정부는 떠넘기는 구조조정에선 프로였지만, 시장프로세스에 따른 구조조정에선 초보자였고 아마추어였다. 그 대가를 경제 전체가 너무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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