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5.8’로는 진동크기 알릴 수 없어
일본기준 싫으면 자체등급을 개발해야
최종 지진대응책인 행동지침의 출발점
지난 12일 밤 경주에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잇따라 닥쳤다. ‘경주에 규모 5.8 강진, 영남 일대는 물론 서울에서도 진동 감지’라는 뉴스 속보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강진’ 소식에 월성 원전의 안전 여부가 뇌리를 스쳤다. 가옥과 교량 등 인공구조물 붕괴나 인명 피해가 없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반 가옥이 벽에 금이 가고 기와가 떨어지는 ‘찰과상’에 그쳤으니 원전의 안전성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부터는 달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경상자가 나왔고, 문화재나 전통가옥 손상에 따른 물적 피해도 작지 않았다. 사전에 행동요령을 교육받지 못한 주민들의 우왕좌왕, 당국의 굼뜬 대응, 한반도 내륙의 활성단층과 원전의 안전성, 건축물 내진설계기준 강화 필요성 등에 보도가 봇물을 이뤘다.
일본이라면 어땠을까. 우선 지진 발생 10초 후면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TV 자막에 이런 내용이 떴을 성싶다. ‘영남 내륙에 지진, 진앙인 경주는 진도 5약ㆍ울산 진도 4ㆍ대구 진도 3… 서울 진도 1, 진원은 경주시 남남서 9㎞, 진원 깊이 13㎞’. 이런 정보에 따른 주민 행동요령도 지역별로 크게 다르게 마련이었다. 경주로부터 대구보다 먼 지역이라면 장롱 위의 유리잔처럼 떨어져 깨지기 쉬운 물건을 높은 곳에 두지 않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 그만이다. 울산이라면 식탁 아래 잠시 몸을 숨겼다가 나와 지진 속보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경주라면 곧장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지리적 위치에 따른 지각구조의 차이가 근본적 이유다. 1995년 한신(阪神)ㆍ2011년 도호쿠(東北) 대지진을 비롯한 강진이 끊이지 않는 일본에 비하면 한반도는 횟수나 규모 면에서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다. 반면 자연조건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인적ㆍ제도적 대응태세의 미비 때문이다. 숱한 미비점 가운데 맨 먼저 눈에 띄는 게 바로 ‘한국형 진도등급’의 부재다.
왜 진도가 필요할까. 흔히 ‘M 5.8’처럼 표시되는 지진의 규모는 연구자라면 몰라도 일반인에게는 지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지진은 ‘땅 흔들림’이라는 일반적 이해와 달리 지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지각파괴 활동’이지, 사람이 살고 구조물이 설치된 지표면의 진동인 ‘지진동(地震動)’이 아니다. 지진의 규모는 방출된 에너지의 절대량만 알려 준다. 규모가 같아도 진앙에서의 지진동은 진원과의 거리나 지각구조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진앙 이외의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의 한신 대지진은 규모 6.8이었지만 6,400여명이 숨진 반면 78년의 미야기(宮城) 지진은 규모가 7.7로 에너지 방출은 약 30배였지만 27명이 숨졌다.
그러니 ‘규모 5.8의 강진’이라고 백날 알려봐야 진앙과 주변 지역 주민의 적절한 대처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 지진동 정도를 수치 지표인 진도로 알려 줘야 한다. 문제는 원전 등 구조물의 내진설계 기준은 지진동의 정확한 강도인 최대지반가속도(PGA)를 중력가속도 단위인 g나 그 980분의 1인 gal로 정확히 나타내는 반면 진도는 지진동 체감 수준이나 가옥 등 인공구조물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한 상대적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일본인의 주관적 진도 감각이 대체로 일치하는 실례에서 보듯, 지진체험관 등을 통한 지진교육을 강화하고 지진 보도 등에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해결될 문제다.
기상청은 과거 일본기상청 진도등급(JMAI)을 쓰다가 미국식 수정 메르켈리 진도등급(MMI)으로 바꾸었지만 사용하진 않았다. 그 때문에 MMI는 국민에 전혀 체감되지 못한 상태다. 애초에 우리 지질과 구조물 특성, 주거 형태와 가옥 밀집도 등을 반영하지 못한 MMI를 쓸 이유도 없었다. 한국형 진도등급이 조속히 만들어져 우선 국민 일반의 지진교육에 널리 활용되길 바라는 이유다. 그것을 지진대책의 구체적 출발점으로 삼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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