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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북한의 수재,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입력
2016.09.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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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 함경북도와 양강도 지역을 휩쓴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회령시 무산군 연사군 온성군 경원군 경흥군 은덕군과 나선시의 일부 지역이 혹심한 피해를 입었다. 두만강 유역의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고, 해방 후 처음으로 맞는 대재앙이었다고 한다. 온성군의 경우 아파트 3층이 물에 잠길 정도로 10m이상 물이 불어났다. 이는 서두수 발전소 물을 무단 방류하면서 생긴 인재라는 주장도 있다. 9월 14일자 북한중앙통신은 인명피해가 수백명에 이르고 6만8,900명이 한지에 나앉았다고 했다. 이재민이 무려 14만명이 되고 주택 4만여채가 파괴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영상 매체에 소개된 피해 상황은 처참했다. 북한 주민들은 홍수 범람으로 유실된 도로와 농경지를 복구하기 위해 기계보다는 대부분 인력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쪽 동포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폭우가 쏟아진 지 한 주 후인 9월 9일 제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수해 복구에는 신경을 끈 채, ‘공화국 창건’을 축하하는 축포를 핵실험으로 대신한 뒤에야 인민의 참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홍수로 삶의 터전을 날려버린 인민들은 그들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로부터 위로와 보호를 받아야 할까.

북한이 느지막하게 수재 참상을 보도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많은 국가들이 대북지원을 꺼리고 있단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많은 재원을 투입해 핵실험을 강행해 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평양주재 외교관들에게 “핵무장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호언하면서 “홍수 피해 사업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다는데 이 또한 이중적인 태도로 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산하의 세계식량기구(WFP)가 14만명에게 식량을 지원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수재민들에게 17만5,000달러의 비상예산을 투입했다는 것은 우리의 측은지심(測隱之心)을 자극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수재에 대해 “같은 동족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북한이 홍수피해를 즉각 복구할 기회를 미루고 5차 핵실험에 치중했다”고 비판하면서, 수재를 도울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북한 수해지역 돕기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우리는 북한 당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한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인도적 지원까지도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정부의 인식이나 대북지원이 그들의 핵무기 제조를 돕고 군량미로도 전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이해한다. 그러면서 과거 남북 사이에 있었던 인도적 지원에 대한 비슷한 예를 떠올리게 된다. 19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수많은 유능한 관료들이 희생되고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었지만, 그 이듬해 9월 전두환 정권은 북의 수해물자 제의를 덥석 받았다. 북의 인도적 제안을 받아들인 이런 예상 밖의 조치로 ‘인도적’ 왕래가 이뤄졌고 결국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남북관계는 이렇게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필요하다.

4차 핵실험 이후 정부는 안보리 2270호를 등에 업고 북을 조이고 있다. 북은 북대로 이제 자기들은 핵무장으로 생존권이 보장되었으니 인민의 복지에 주력하겠다고 선전전에 임하고 있다. 그만큼 여유를 가졌다는 뜻일까. 말폭탄이 오가는 속에서도, 핫라인은 있어야 하는 법. 이번에 정부든 민간이든 인도적 지원이 이뤄져서 천재지변을 서로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꽉 막힌 남북 간에 새로운 통로를 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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