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주 지진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420차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에서 감지된 규모 5.8 지진의 충격으로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었음을 온 국민이 실감하게 했다. 첫 지진이 발생한 지 2주가 지났지만, 대부분 한국인에게 생소한 자연재해였던 만큼 과장된 공포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유통되며 올바른 대응과 수습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진관련 전문 연구기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추천을 받아 강태섭(47)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를 만난 이유는 이번 지진의 정확한 원인과 향후 지진 가능성, 대응방안 등을 전문가에게서 듣고 싶어서다. 지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기자는 우선 기초 지식부터 물어야 했다.
_지금까지 한반도는 거대한 유라시아 판 위에 있어서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경주 지진 이후 머나먼 인도판이 우리나라가 속한 유라시아판을 밀어내고 그 압력이 태평양판과 만나는 지진 위험지역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활성단층이 무수히 많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갑자기 한반도 땅 밑이 바뀐 건 아닐 텐데, 활성단층 판구조 같은 기본 개념부터 설명해달라.
“비누 2개를 맞붙여 서로 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생각해보자. 물론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기거나 뭉개지는 것은 비누가 맞닿는 곳이겠지만, 그 힘은 모든 곳에 균등하게 작용한다. 계속 힘을 가해서 밀면 점점 비틀어지다가 결국 비누 자체도 부서지게 된다. 지구의 지표를 구성하는 거대한 판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압력을 받게 되면 가장 심하게 미끄러지거나 균열이 생기는 지점은 판들이 만나는 경계다. 지구상 발생하는 지진의 95% 이상이 바로 그 경계지점을 따라 발생한다. 일본열도가 바로 그 경계지점 위에 위치한다. 그렇지만 그 경계에서 수백㎞ 이상 떨어진 한반도 지각에도 똑같은 압력이 작용하며 상대적으로 약한 지층인 단층을 따라 지진이 발생한다. 전 세계 지진의 5% 이하인 판 내부 지진이 12일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여진은 지진 이후 뒤틀린 지각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_그런 단층이 한반도에 20여개 존재한다는 것인가.
“한반도 내에 정확한 단층의 존재와 위치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 관심의 대상이 되는 활성단층은 지질학적 조사를 통해 과거 지각이 움직인 흔적을 암석 등을 통해 확인한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지진이 발생한 흔적이 있다면 또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비교적 가까운 과거라는 것이 약 200만년 전후이다. 어떤 단층이 활성단층인지 여부를 알려면 암석에 대한 분석만으로 부족하다. 과거 역사기록을 조사하는 것은 물론 단층 지형 곳곳에 지진계를 설치해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미소지진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같은 현재 상황도 분석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반도 대표적 단층인 양산단층도 학계에서는 활성단층인지 여부에 대해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을 정도다. 물론 이번 경주지진으로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_지진이 발생해야 비로소 지진위험 지역인 줄 알게 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럼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지질 조사할 필요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정부가 2009년부터 단층지도 발간 프로젝트를 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했으나, 2012년 완성된 보고서를 놓고 졸속 논란이 일어 공개 불가 결정을 내렸다던데.
“소방방재청 주도로 그런 사업을 벌였는데, 당시에도 너무 서둘러 결론을 요구해 문제가 됐다.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20년, 30년 이상이 필요한 연구인데, 이걸 3년 내 완성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서 자세한 조사대상을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으로 한정했지만, 그마저도 결국 수십㎞ 단층 전체를 불과 몇 곳의 시료 채취와 한 종류의 연대 측정만을 한 뒤 결론을 내려야 하는 등 전반적으로 활성단층 여부를 판단하기 미흡한 결과에 그쳐 전문가 그룹이 공개를 반대했다. 활성단층 지도를 만드는 목적은 어떤 단층지역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미리 파악해 대비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정부가 요구한 지도로는 그걸 정확히 파악하기 불가능했다. 정밀한 연대측정을 해서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지진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얼마나 단층이 이동했는지, 그 단층에서 최근 미소지진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정확한 지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주어진 기한 내에 그럴듯하게만 보이는 지도를 내놓고 싶어 한다. 지금부터라도 20, 30년의 중장기 계획을 세워 다시 시작해야 한다.”
_이를 두고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주변의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의 위험을 은폐하려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는 않다. 실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활발한 토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활성단층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전을 짓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방폐장 등의 시설은 관련법에 따라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별도 기준이 마련돼 있다. 지진으로부터 절대 안전해야 하는 원자력발전소 부지의 경우 과거 50만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흔적이 있거나, 3만5,000년 이내에 한 번 움직인 흔적이 있으면 활동성 단층으로 정의하고, 부지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하게 조사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미국의 기준을 한국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_이번 경주지진을 계기로 인근에 밀집한 고리와 월성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70년대 고리에 첫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때부터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등에 대한 우려가 많이 제기됐다. 너무나 뚜렷한 선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또 역사를 볼 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경주 주변에서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 지질학적 증거 등으로 볼 때 활성단층의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실제 지진을 관측한 적이 없어 결론 내리지 못했고, 원전 건설이 그대로 진행됐다. 당시 개발 논리가 사회를 주도하는 분위기에 힘입은 정치적 판단이 우세했던 결과가 지금과 같은 많은 우려를 낳게 됐다.”
_이번 지진으로 활성단층임이 입증된 양산단층 주변에 원전이 밀집해 있다. 이 지역의 지진 위험성을 따지기 전에 우선 지진의 규모와 진도 개념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경주 지진 규모가 5.8이었는데 6.2 규모였던 이탈리아가 큰 피해를 본 것과 달리 우리는 피해가 작았다.
“규모라는 건 그 지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에너지의 크기가 얼마냐를 얘기하는 거고 진원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충격이 줄어든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진원에서 멀리 떨어지면 진동은 줄어든다. 각 지역의 진동을 측정하는 것이 진도다.”
_그렇다면 원전 안전 기준은 규모가 아니라 진도에 따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도 개념은 중력가속도를 이해해야 하는 복잡한 개념이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규모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대신 원전 건설의 안전기준이 규모 6.5라면 그것은 원전 바로 밑이 진원일 경우를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훨씬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6.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그 지진의 진원이 원자로 바로 밑일 가능성은 훨씬 더 낮다.“
_그래도 막상 경주에서 5.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고 보니 원전 안전기준이 규모 6.5라는 건 안심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분명 이번 경주 지진이 일어나기 전과 후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선 양산단층이 언제라도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활성단층이라는 점이 확인됐고, 이후에 지진이 또 일어난다면 어디서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인가에 대해 답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엔 지진이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원전에 미치는 진도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설사 규모 7의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그 지점이 양산단층 주변이라고 특정할 수 있게 돼, 원전에 미칠 충격을 예상하는 것이 더 정확해진다. 이전의 불확실성이 해소됐으니, 예상 가능한 최악의 경우를 산정해 보강할 부분은 보강해 나가면 되고, 불가피한 경우에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는 등의 과학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_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심각한 지층의 변화가 있어서 이후 한반도 지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진발생 횟수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미세하게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가 자리하고 있는 지각 자체가 변화 상태에 놓여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동일본 대지진이 없었다면 경주지진이 안 일어났을까’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그 주장은 일부만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단층이란 것을 확인됐고, 그 규모가 5.8이었으니 그보다 더 큰 지진도 예상할 수 있게 됐다.”
_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 혹시 규모 9가 될 가능성은 없는 건가.
“판 내부에서 그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과거 문헌에 나타난 피해를 통해 추론한다면 규모 6.5에서 7 정도의 지진이 최대규모 지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 규모의 지진은 다시 발생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내일 일어날 것처럼 우려할 필요는 없다. 어디서 그런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을지 파악하고 미리 대비한다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지, 일단 실체를 파악한다면 더 이상 큰 위협은 아니다. 놀이공원 공포체험과 같이 깜깜해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지, 환한 곳이라면 누가 놀라겠나.”
_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다들 원전 안전에만 관심이 집중된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에 원전 시설물처럼 지진 가능성을 면밀히 고려한 시설물은 없다. 지나치게 원전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당장 보강이 시급한 시설들이 관심에서 멀어질까 우려된다. 한꺼번에 내진 설비를 보강할 순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학교, 병원 그리고 지진 발생 시 구난에 나서야 하는 소방서와 경찰서 등을 먼저 점검하고 보강해야 한다. 또 이런 주요 시설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아야 하지만, 일반 주택 같은 경우는 우선 지진에 붕괴해도 사람이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는 버틸 수 있도록 주요 구조물 위주로 보강해 나가야 한다. 국민에게는 과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지금 나오는 정보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다. 지진 재해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과학적 능력을 지금보다 더 높이고, 지진 발생 시 정확한 정보를 보다 이른 시기에 얻고 싶다면, 관련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그에 걸맞은 전문 인력 양성이 이뤄져야 한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강태섭 교수는
- 서울대 지질과학과 학사, (지구물리학 전공) 박사
- SK건설(주) 연구소 주임연구원
- 일본 국립방재과학기술연구소(NIED) 방문연구원
- 한국전력기술(주) 토목기술처 책임기술원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現 부경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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