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무엇이 예술보다 가치 있을까요?”
온통 물감으로 뒤덮인 최고급 벤틀리. 그 뒤로 자리한 조각 공원. 10월 11일 정식 개관 전부터 독특한 외관으로 이미 지역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서울 소격동 갤러리 ‘바라캇 서울’의 파에즈 바라캇(67) 회장은 지난 23일 한국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려 15년 동안 함께 했던 차량에 액션 페인팅을 펼친 데는 ‘세상 어떤 것도 예술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부다비에서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며 그는 “너무 몰입한 나머지 창문까지 온통 페인트를 칠해 결국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작품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세관 직원이 ‘엔진이 부착돼 있어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기에 논쟁할 수밖에 없었어요. 세금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을 ‘작품으로 인정 받느냐’의 문제였다고 할까요.”
불편한 다리로 매일 같이 작업을 하는 그는 사실 아티스트로서보다 ‘바라캇 갤러리’를 5대째 이어오고 있는 고대 예술품 컬렉터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바라캇 갤러리는 1864년 예루살렘에서 문을 열었으며 이후 파에즈 바라캇 회장이 정치적 이유로 미국 이민을 택한 1983년부터 베벌리힐스, 런던, 아부다비 등 세계 주요 도시에 갤러리를 열었다. 파에즈 바라캇은 2004년 매거진 ‘리더스’가 꼽은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였으며, 아부다비관은 2011년 아랍에미리트 지역 최고 갤러리로 뽑히기도 했다.
바라캇 갤러리는 예루살렘의 성서 유물을 기반으로 시작됐다. “그러니까 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자리가 마침 고대 무덤이 있던 자리였어요. 발굴한 물건들을 시장에 팔기 시작한 것이 갤러리를 운영한 계기였고, 본격적인 성장은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영국이 예루살렘을 지배하면서부터죠.”
박물관급 유물 4만여 점을 보유한 바라캇 갤러리는 그 네 번째 도시로 서울을 택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품 소유가 아니라 자신의 컬렉션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그는 아시아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올해 4월 이틀의 짧은 일정으로 서울을 찾았다. 삼청동도 그때 처음 방문했다.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있는 궁들과 수준급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공존하는 게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마침 비어있던 지금의 갤러리 공간을 서둘러 계약했다.
지상 4층, 870㎡(260평) 크기의 갤러리는 특별히 엄선한 500여 작품을 위주로 먼저 문을 연다. 기회가 닿는 한 최대로 바라캇 갤러리 컬렉션의 다른 작품도 선보이고 싶은 게 그의 욕심이다. “전국 순회전을 열어 그간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보기 어려웠던 고대 그리스, 이집트 등 고대예술품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하고 싶어요. 일정기간 작품을 대여해 연구기회를 주는 것도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서울관은 바라캇 갤러리의 다른 분관과 달리, 전통과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거리의 특성을 살려 고대예술품과 현대미술을 나란히 배치하는 독특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문화들을 어우르는 실험의 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컬렉터이면서 아티스트기 때문에 가능한 전시”라는 그의 자신감이 바라캇 서울을 기대하게 만든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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