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을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술을 체질적으로 잘 마시지 못해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량이 늘어난다. 그래서 애주가들은 “술은 마시면 늘어난다”며 술을 강권한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도 자주, 많이 술을 마시면 정말 주량이 세질까.
주량을 결정하는 것은 알코올 분해효소(Aldehyde dehydrogenaseㆍALDH) 양이다. 이승원 부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ALDH가 부족하면 알코올의 1차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에 축적돼 조금만 술을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메스꺼움을 느끼고, 숙취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장은선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의 14.5% 정도는 유전적으로 ALDH가 거의 없고 전체 국민의 50%가 ALDH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술을 자주 많이 마시면 주량이 늘어난다고 느끼는 것은 ‘마이크로좀 에탄올산화계(MEOS)’효소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간은 기본적으로 ALDH를 통해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한다. 하지만 음주량이 늘면 ALDH 혼자 힘으로 알코올을 분해할 수 없다. 음주량이 증가했다고 해서 ALDH는 추가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다.
이에 간은 ‘MEOS효소 카드’를 사용한다. MEOS효소는 평소 알코올 분해에 관여하지 않지만 알코올 농도가 증가하면 알코올 대사에 참여한다. 김성은 한림대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장기간 음주가 반복되면 MEOS효소가 분비돼 효소능력이 5~10배 늘어나 알코올 분해가 약간 늘어날 수 있다”면서 “MEOS효소가 활성화돼 주량이 늘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만성적으로 술을 마셨을 때 활성화되는 MEOS효소가 알코올 대사에 관여하는 정도는 10% 수준”이라면서 “알코올 분해효소가 부족한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면 일시적으로는 주량이 증가한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일시적 효과일 뿐 실제로 주량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과도하게 음주에 노출되면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에 내성이 생겨 인체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주량이 증가한 것으로 착각한다. 전용준 다사랑병원 내과 원장은 “겉으로는 주량이 증가한 것처럼 느끼지만 술을 과음하면 간은 사용가능한 모든 효소를 동원해 쉬지 않고 알코올을 분해할 수밖에 없다”면서 “겉으로는 멀쩡해도 분해되지 않은 아세트알데히드가 체내 축적돼 간염, 간경화, 간암 등 간질환과 함께 식도암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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