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플랫폼 북팔에서 소설을 연재 중인 작가 메그(31ㆍ필명)는 1년 전까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였다. 문학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하고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직업은 다른 데서 찾은 것이다. 그러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퇴직하고 웹소설 작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로 상 받은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순문학 쪽은 워낙 등단 장벽이 높아 포기했던 거죠. 마침 웹소설이 한창 뜨는 분위기라 관심이 있었는데 제가 예전에 쓰던 글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 몰라 일단 웹소설 강의를 찾았어요.” 그는 북팔 웹소설 아카데미에서 약 1년 간 실전 연습을 한 끝에 7월 예스24 ‘제2회 e연재 공모전’에 ‘지그재그 로맨스’로 우수상을 받으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웹소설 시장이 커지면서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강의와 책이 인기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글쓰기 관련 서적 판매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9% 감소한 반면 소설쓰기 책 판매율은 21.8% 증가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팔린 소설쓰기 책의 판매량을 100으로 놓고 연도별 점유율을 계산했을 때 올해 판매율은 17.1%로 가장 높다. 그 중 상당수는 웹소설 작법 책이다. 올해 1~8월 소설쓰기 분야에서 판매 1위를 한 책은 ‘도전! 웹소설 쓰기’(폭스코너)다. ‘위험한 신입사원’의 박수정 작가를 비롯해 6명의 웹소설 작가가 함께 쓴 이 책에는 자신이 어떻게 웹소설 작가가 됐는지, 판타지ㆍ로맨스ㆍ미스터리 소설은 어떻게 쓰는지, 글쓰기 외에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체험을 바탕으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외에도 ‘장르 글쓰기.1: SF 판타지 공포’(다른), ‘라이트 노벨: 구성과 작법 노하우’(비즈앤비즈),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1: 로맨스’(북바이북) 등 판매율 20위권 안에 13권이 웹소설, 장르소설 작법 책이다.
독학으로 부족한 이들은 강의를 찾아 나선다. 웹소설 강좌로는 최초로 정규과정을 만든 북팔의 ‘로맨스 웹소설 아카데미’는 최근 1기 과정을 마치고 현재 2기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원장은 ‘아내 키우는 남자’ ‘악마와의 하룻밤’ 등을 쓴 웹소설 작가 윤혜란(필명 아리엘)씨로, 2001년부터 활동해온 소위 ‘인터넷소설 1세대’다. 윤 작가에 따르면 학원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는 대학 초년생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전업 작가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고 글쓰기가 로망이었다가 퇴직 후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30대 후반의 한 남성은 ‘보험 들려고 왔다’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언제까지 직장 다닐지 모르는데 미리 다른 길을 준비하겠다는 의미죠.”
수강생 중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기성작가나 인터넷소설 작가도 끼어 있다. 1년 전부터 웹소설을 연재 중인 A(30)씨는 과거 팬픽(팬이 특정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쓰는 소설) 작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대학생 때 쓴 ‘동방신기’ 팬픽을 눈여겨 본 지인이 한 신생 웹소설 사이트에 그를 추천하면서 공모전 없이 ‘특채’ 형태로 웹소설 작가가 된 것이다.
경력자부터 초보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웹소설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초기 투자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보고서 ‘스몰 콘텐츠 웹소설의 빅 플랫폼 전략’에서 웹소설을 ‘스몰 콘텐츠’로 명명하며 ▦웹툰과 달리 전문적인 장비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고 ▦전문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순문학계와 달리 독자와 창작자가 혼재돼 있으며 ▦연령ㆍ경력에 구애 받지 않아 진입이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독자가 없는 지망생 처지에선 글을 써도 보고 평가해줄 사람이 없다. 관련 서적과 강의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다. 윤 작가는 “수강생들이 실전 강의에 목말라 있다”고 말한다. “대학이나 문화센터에 순문학 강좌는 많지만 웹소설 강의는 없거나 비정기적으로 있어요. 지망생들은 깜깜한 터널 안에서 혼자 걸어가는 격입니다. 자기 글의 장단점이 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굉장히 감격스러워 해요.”
북팔 이전에도 상상마당이나 경기콘텐츠코리아랩 등에서 일회성 웹소설 강좌가 열렸다. 지난해 초 상상마당 강좌 ‘웹시대의 소설쓰기’에서 강사를 맡았던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강의가 필요한 건 오히려 순문학이 아닌 웹소설 쪽”이라고 말했다. “순문학은 작가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정한 창작법이 없어요. 하지만 웹소설은 미스터리, 판타지, 로맨스 등 장르문학이기 때문에 해당 장르의 유형과 공식을 꼭 배워야 합니다.”
그는 현재의 웹소설 붐을 “90년대 들어 붕괴된 대중문학 시장이 웹소설 플랫폼이란 수익 구조를 만나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최인호, 박범신, 김홍신, 김진명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문학이 거의 붕괴했다가 다시 가시화한 게 인터넷 소설 ‘귀여니’라고 봅니다.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전무하다 보니 인터넷 소설로 빠르게 넘어간 거죠. 그러나 수익구조가 없어 더 이상 커나가지 못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웹소설 플랫폼으로 인해 급격히 팽창했어요.”
이 말처럼 지금 웹소설 판은 인터넷 소설, 팬픽, 대중소설, 장르소설 등 순문학 범주 바깥의 모든 소설 형태를 흡수하는 중이다. 김 평론가는 이를 웹소설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 기회로 본다. “6, 7년 전 웹소설 공모전 심사를 할 때만 해도 작품 중 한숨 나오는 것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역량을 갖춘 작가들이 늘어나고, 그러다 보면 웹소설도 과거 대중문학처럼 폭넓은 독자층을 가질 수 있겠죠.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나 노르웨이 추리작가 요네스 뵈 정도의 작품만 나와도 주류 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글쓰기 책 및 소설쓰기 책 판매 증가율
(단위: %)
*글쓰기 내 소설쓰기 포함(교보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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