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id not, I did not. I do not say that” (틀렸어, 틀렸다고. 난 그런 적 없어.)
지난 26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선 1차 TV토론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바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Not” “Wrong”(틀렸어)일 겁니다.
민주당 후보자 클린턴 힐러리의 말을 끊고 계속 끼어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토론 태도는 무례함을 넘어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상대 후보의 건강 상태까지 트집잡는 인신공격성 비난과 조롱이 난무하면서도 그걸 또 “오케이”하며 가볍게 웃어 넘기는 후보자의 모습을 보며 ‘참 미국답다’는 생각이 든 한편 상대를 깎아 내리는 ‘네거티브 공방’은 우리나 미국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8,400만 명의 미국인이 지켜봤다는 이 화제의 토론에서 꼭 배우고 싶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미국 주요 언론들의 실시간 ‘팩트 체크’(Fact Checkㆍ사실 확인)였는데요.
CNN과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은 90분 간의 토론 도중과 직후 후보자들의 발언을 검증해 이 결과를 온라인 공간에 공유하기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클린턴이 “트럼프는 사업을 시작할 때 그의 아버지로부터 1,400만 달러(154억원)를 받았다”는 주장에 트럼프가 “매우 적은 돈을 빌려준 것 뿐”이라고 맞서자 NYT와 폴리티코 등은 “트럼프가 1980년대 초까지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에게 빌린 돈은 1,400만 달러”라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를 인용해 사실을 바로 잡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트럼프가 ‘중국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표현했다는 클린턴의 주장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NYT 등은 2012년 그의 트윗 내용을 공개하며 발언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한 언론이 실시간 ‘거짓말 체크’에서 트럼프가 16차례, 클린턴이 0차례 거짓말을 했다는 조사 결과(허핑턴 포스트)를 발표했을 정도니 발언 하나하나를 놓고 언론의 검증 작업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예상이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본보(‘언론들, 두 후보 발언 실시간 팩트 체크’)를 비롯해 국내 언론들도 ‘美 TV토론 승부 가른 ‘실시간 사실 확인’(KBS 뉴스9), ‘美언론 실시간 거짓말 체크 “트럼프 16차례, 클린턴은 0”’(조선일보) ‘미 대선 1차 토론 끝난 뒤 팩트 체크 올인하는 미국 언론’(한겨레신문) 등 TV토론 관련 기사로 미 언론의 팩트 체크를 비중 있게 다루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씁쓸한 현실입니다.
언론의 팩트 체크는 당연한 언론의 역할인데 이를 대단하다고 기사화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국내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언론의 팩트 체크 기능은 사실 상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2012년 18대 대선을 돌이켜봐도 그 해 12월 초 후보자들의 TV토론 이후 주요 언론들은 ‘문재인 측 “이정희가 망쳐, 양자 토론을”’(조선일보) ‘막말 대선토론 개선요구 빗발’(중앙일보) 등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독설을 문제 삼는 데 지면을 할애하기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후보자들 간의 공방을 그대로 옮기기에만 급급한 국내 언론 현실을 감안하면 미 언론의 팩트 체크가 ‘뉴스’가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NYT가 팩트 체크 동영상 말미에 쓴 ‘What else should we check?’(뭘 또 확인하면 되죠?)란 한 문장이 19대 대선을 1년 여 앞둔 현재 국내 언론이 뜨끔해 할 질문이 되고 있습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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