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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비서 넘어 AI변호사까지… 당신의 직업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6.10.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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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5년간 살다 온 고등학생 아들은 취미로 한국의 웹소설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영어로 번역한 뒤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좋은 작품을 영미권 독자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비슷한 열정을 지닌 전 세계의 아마추어 번역가들과 인터넷을 통해서 교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들은 장래에 전업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번역 일의 어려움을 아는 나는 아들에게 “번역가는 그렇게 안정된 직업이 아니며 장래에는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들은 그래도 “기계가 쉽게 사람처럼 감칠맛 나게 번역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던 아들이 며칠 전 내게 와서 “아빠, 구글이 완벽한 번역기를 만들어냈대요”라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가 들어 봤더니 구글이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할 때 썼던 신경망 기반 기계학습 인공지능을 영어와 중국어 번역에 적용해 구글 번역기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다는 것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구글 번역기는 그 후 번역 오류가 80%까지 감소했고, 이제는 사람의 번역과 거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까지 실력이 향상됐다. 나는 “앞으로 네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결국 대체하지 않겠느냐”며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아들에게 다시 조언했다.

한 이용자가 SK텔레콤의 한국어 음성인식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에 말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한 이용자가 SK텔레콤의 한국어 음성인식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에 말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생활 깊숙이 파고든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이처럼 놀랍다.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인공지능서비스들이 생활 속으로 속속 파고 들고 있다.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알렉사’가 적용된 아마존의 블루투스 스피커 ‘에코’가 대표적이다. “알렉사, 록 음악을 틀어줘”하는 식으로 음성 명령을 내리면 이를 알아 듣고 즉각 실행하는 이 제품은 미국에서만 400만대 넘게 팔려 ‘대박 상품’이 됐다. 이제는 “알렉사, 방에 불 좀 절반 정도로 어둡게 해줘”, “알렉사, 우버 택시 좀 불러줘” 등과 같은 방식으로 생활 속의 다양한 기기, 서비스와 연동되도록 진화 중이다.

알렉사가 더 무서운 점은 매일 적어도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아 대답하면서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자체 스마트TV인 파이어TV 리모컨에 알렉사를 적용하는 등 이 인공지능 기능을 확대 적용해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고자 꿈꾸고 있다. 구글도 에코의 경쟁제품이 될 ‘구글 홈’이란 가정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올 연말에 출시할 계획이고 애플도 비슷한 제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도 지난 8월 한국어 음성인식 인공지능 서비스 ‘누구’서비스와 관련 스피커를 선보였다.

초소형 몸체(83×198×83mm)에 인공지능 기능을 결합한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DJI의 신형 드론 '매빅 프로'. DJI 홈페이지 캡처
초소형 몸체(83×198×83mm)에 인공지능 기능을 결합한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DJI의 신형 드론 '매빅 프로'. DJI 홈페이지 캡처
한 이용자가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DJI의 신형 드론 '매빅 프로'를 날리고 있다. DJI 홈페이지 캡처
한 이용자가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DJI의 신형 드론 '매빅 프로'를 날리고 있다. DJI 홈페이지 캡처

중국의 세계 최대 민간용 무인항공기(드론) 업체인 DJI는 최근 ‘매빅 프로’라는 신형 드론을 내놨다. 초소형이지만 4K급 초고화질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런데 이 드론의 특징은 따로 있다. 다양한 인공지능 기능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매빅 프로는 따로 리모콘으로 조종하지 않아도 감지기(센서)로 사람을 인식하며 따라 다닌다. 또 사람의 몸동작을 인식하는 기능이 들어가 드론 밑에서 양손을 흔들면 사람을 인식하고, 크게 양손을 Y자 형태로 벌리면 촬영을 시작하기도 한다. 비행 중 장애물이 있으면 알아서 이를 인식하고 충돌을 피한다. 불과 2년 전 구입한 DJI ‘팬텀 드론’에는 이런 기능이 전혀 없었다. 2년 만에 사람이 드론을 직접 조종을 해야 할 일이 크게 줄어버린 셈이다. 올해 한 학술 회의에서 만난 DJI의 전 고위임원이 “DJI는 드론 회사가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회사”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회사는 인공지능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AI의 인간 직업 대체 이미 시작

꼭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공룡 기업만이 인공지능 서비스를 내놓는 것은 아니다. 어린 학생도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 19세의 영국인 청년 조슈아 브로더가 대표적이다.

로봇변호사 사이트(Donotpay.co.uk)를 개발한 영국 청년 조슈아 브라더. 미 CBS 방송화면 캡처
로봇변호사 사이트(Donotpay.co.uk)를 개발한 영국 청년 조슈아 브라더. 미 CBS 방송화면 캡처

1996년 영국 런던 태생인 조슈아는 18세에 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국은 주차 단속이 엄격한 탓에 그는 주차위반 딱지를 4번이나 받게 됐다. 화가 난 조슈아의 부모는 “이제는 네가 알아서 하라”며 더 이상 벌금을 대신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슈아는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과도한 단속으로 부당하게 주차위반 딱지를 발부 받은 것이란 결론에 이른 조슈아는 실제 주차위반 벌금 부과 여부를 심사하는 법원에 항의서한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서한 작성 때문에 변호사에게 거액을 내고 일을 의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경우에 주차위반이 성립하는지를 치밀하게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 항의서한을 쓴 조슈아는 결국 자신의 주차위반 딱지를 취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름 요령을 터득하게 된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위반 딱지를 취소시키는 것도 도와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뭔가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슈아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코딩(컴퓨터 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에 능숙했다. 그는 이 능력을 십분 발휘해 인공지능을 적용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면 자신이 겪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몇몇 변호사들에게 전화해 이 아이디어를 말했는데, 변호사들은 모두 “안될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미 스탠포드 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공개된 강좌를 통해 인공지능 기계학습 기법을 익혔다. 그리고 모르는 부분은 인공지능 전문가인 학교 교수에게 찾아가 직접 물어봤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지난해 9월 ‘벌금내지마세요’(Donotpay.co.uk)라는 로봇변호사 사이트를 완성해 공개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어떻게 주차위반 딱지를 발부 받았는지를 설명하면 변호사가 써준 것과 같은 항의서한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그는 사이트를 완성하고 초기에는 주위 친구들에게만 알렸다. 그런데 점점 입소문이 나고 언론 보도도 이어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사이트를 방문해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까지 16만명이 이 사이트를 이용했고, 수 많은 주차위반 딱지가 이 인공지능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취소됐다. 이 인공지능 변호사를 통해 취소된 벌금만 40억~50억원이 될 정도다. 이렇게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안될 것”이라고 했던 변호사가 연락을 해와 이 서비스를 인수하고 싶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조슈아 브라더가 개발한 로봇변호사 사이트에서 대화 방식으로 자신이 어떻게 주차위반 딱지를 발부 받았는지를 설명하면 변호사가 써준 것 같은 항의서한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홈페이지 캡처
조슈아 브라더가 개발한 로봇변호사 사이트에서 대화 방식으로 자신이 어떻게 주차위반 딱지를 발부 받았는지를 설명하면 변호사가 써준 것 같은 항의서한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홈페이지 캡처

조슈아는 한 컨퍼런스에 참가해 자신의 로봇변호사 개발 경험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다. 겨우 19살로 경험도 부족한 내가 개발한 인공지능 변호사가 수 많은 주차위반 관련 변호사의 일감을 대체해 버렸다. 지금 전 세계에서 나보다 뛰어난 수 천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얼마나 훌륭한 인공지능 서비스가 얼마나 더 많이 나올지 모른다.” 조슈아는 이어 “한편으로는 이런 인공지능 서비스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비싼 고급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애플 아이폰에서 구글이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한다고 신기해서 온라인에 글을 썼던 것이 2009년인데 이제는 누구나 당연하게 음성으로 인공지능비서를 이용하게 됐다. 앞으로 5년 뒤면 또 얼마나 진보가 이뤄질지 알 수 없다.

머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서 해방시켜줄 것은 분명하다. 바꿔 말하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직업은 점차 인공지능에 대체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조슈아 같은 창의적인 인재는 더욱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암기 위주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교육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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