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0명 중 4명이 60대 이상
신체 능력 저하로 사고 잇달아
5년 단위 적성검사 받는 게 전부
건강 상태 엄격한 점검 필요
6월 중순 오후 10시 서울 강남의 한 특급호텔. 조용하던 호텔 입구에 별안간 정적을 깨는 차량 굉음이 들려왔다. 손님을 내려주고 출발하던 모범택시 한 대가 갑자기 속도를 내더니 정차 중이던 앞 차량을 들이받았다. 택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승용차와 충돌한 뒤 간신히 멈춰 섰다.
이 사고로 택시기사 정모(74)씨와 로비에서 근무 중이던 호텔 직원 한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이었다면 자칫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시에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발이 가속페달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올해 2월 초 서울 서초구의 한 도로에서는 개인택시기사 김모(71)씨가 손수레를 끌고 가던 70대 노인을 친 뒤 10m를 더 진행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시속 40~50㎞의 속도였지만 김씨는 미처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조사 결과 김씨는 3년 전 뇌졸중 수술을 받은 이후 시력 장애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승객들의 구호조치 논란을 빚었던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와 지난 8월 대전의 택시 사고도 60대 초반 기사들의 갑작스런 심장마비 등 건강 이상이 발단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나이 많은 택시기사들이 일으킨 사고를 조사하다 보면 운동ㆍ인지능력 저하가 원인이 된 사고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3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택시기사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41.9%로, 2011년(26.4%)보다 1.5배 늘었다. 버스나 트럭은 70세가 가까워지면 운전을 그만두는 경우가 다수지만, 택시는 인력난 탓에 사업용 차량을 운전하다 은퇴 후 유입되는 인원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특히 법인택시들은 만성적인 기사 부족에 시달려 고령 운전자들을 대거 받아 들이고 있다”며 “이런 인력 수급 자체가 택시기사 고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신체 기능이 저하된 고령의 택시기사들을 관리할 시스템은 전혀 없다. 택시기사도 일반운전면허 소지자와 마찬가지로 65세가 넘으면 5년 단위로 정기적성검사를 받는 게 전부다. 국민안전처가 최근 75세 이상 면허소지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성검사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택시기사는 60대와 70대 초반에 몰려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개인차는 있으나 60세가 지나면 신체활동이 둔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특히 운수업 종사자는 대형 인명사고에 잠재적으로 노출된 만큼 보다 엄격히 건강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버스와 비교해도 고령 택시운전사 관리 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교통안전관리공단은 올해부터 65세 이상 버스 운전자들에게 ‘운전적성 정밀 자격유지검사’를 받도록 했고, 위반 시 당사자에게 최대 50만원의 과태료를, 사업주에게도 최대 180만원 과징금을 물게 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택시는 제외됐다. 2014년 해당 법안이 처음 발의됐을 때 택시도 포함됐으나 업계의 반발에 밀려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택시기사 고령화로 인한 사고 발생 비율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관리를 맡은 국토교통부 및 교통안전공단과 단속 주체인 경찰이 협의해 다른 운송수단에 준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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