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광은 20~30년전 연구성과
“현재의 일본과학기술력 아니다”
일본이 명실상부한 과학강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이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 배출국가가 됐으며 역대 노벨상 수상자만 25명(미국 국적자 2명 포함)으로 늘었다. 문학상 2명과 평화상 1명을 빼면 자연과학분야에서만 22명의 연구자가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정작 일본 내에선 중국 등 후발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고 젊은 과학자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과학 백년대계’의 면모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일본 스스로도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과학강국의 요인을 잘 분석하고 있다. 언론들은 ‘국가주도형 과학부양’에서 우선 답을 찾고 있다. 실제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후 군사기술을 비롯한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을 쏟았고 결과적으로 기초과학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1900년대 초반 노벨상을 받은 서구 과학자 문하에 의도적으로 많은 일본인 연구자를 포진시킨 전략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일본 과학계는 특히 5년 단위로 과학정책을 재점검토록 한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이후 17명 수상자의 연구실적 발표 시기가 1960년대 2건, 70년대 5건, 80년대 4건, 90년대 이상이 4건인 점으로 미뤄 일본의 노벨상 야망은 90년 대 훨씬 이전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2001년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향후 50년간 노벨상 30명 수상’이란 구체적 목표를 내걸면서 공개적으로 노벨상 공략에 나선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2010년 과학계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며 노벨상 목표를 삭제하긴 했지만 일본 정부 사이드에서는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평가다. 일본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적용하는 제5기 과학기본계획에 국내총생산의 1%인 26조엔(약 280조5,894억원)을 연구개발예산으로 배정했다.
일각에선 특유의 장인정신이나 특정분야에 병적으로 몰입하는 ‘오타쿠 문화’도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02년 학사출신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씨가 노벨화학상을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정작 일본에선 경각심을 부쩍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대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 교수는 “지금 일본인의 연속 수상은 현재의 과학기술진흥책이 성공이라는 게 아니라 20년, 30년전 연구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축을 잘 봐야 한다”고 아사히(朝日)신문에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과학논문수 국가별 랭킹이 일본은 2000년대 초반 미국에 이어 2위를 고수했지만 2011~13년 들어 평균 5위권으로 내려갔다. 중국이 대략 6위에서 2위권으로 도약한 것과 대비된다는 우려와 지적이다.
기초분야에서 관심을 거두는 젊은 연구자들이 많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은 “지금 대학의 연구현장을 보면 마냥 노벨상에 들떠있을 상황이 아니다”며 “오스미 교수처럼 자유로운 발상으로 연구하는 예전의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도리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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