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시도 끝에 법원으로부터 고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영장을 발부 받은 경찰이 시간이 갈수록 영장집행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부검영장 논란 당시 쏟아진 법조계와 의료계의 비판에 이어 서울대병원 역시 영장신청의 근거가 된 백씨 사망진단서가 지침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유족 측 반발도 한층 거세져 경찰과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강제집행 카드밖에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백씨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오늘까지 부검 협의 시한을 통보했지만 부검을 전제로 한 협상에는 절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의를 하려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해 부검영장에 대한 확인 절차가 먼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단 ‘협의 후 영장집행’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속적으로 유가족과 (부검영장) 집행을 위한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끝까지 반대하면) 그 때 가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전날 서울대병원ㆍ서울대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의 백씨 사망진단서 검토 결과가 공개되자 영장집행을 위한 근거가 사라졌다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경찰 안팎에서 애초 무리한 영장 신청이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서울대병원이 사실상 사인을 ‘외인사’에 무게를 둔 취지로 발표하지 않았느냐”며 “경찰 논리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도 “어떤 식으로든 부검영장 집행을 시도하겠지만 강제 집행에 따른 후폭풍에 대비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수사당국이 부검 당위성을 주장하며 백씨와 유사 사례로 소개한 사건이 재판에서 ‘병사’로 인정받지 못한 것도 경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2014년 강원 원주시에서 가정집에 침입한 도둑이 집주인에 맞아 뇌사에 빠졌고, 9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가 폐렴으로 숨졌다. 사건 발생 10개월 만에 숨진 백씨와 과정이 비슷하다. 경찰은 전날 ‘피해일로부터 1년 가량 경과 후 사망 시 부검 사례’를 요청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질의에 이 사건을 근거로 부검영장에 하자가 없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직접 사인은 폐렴(이라 할지라도), 폐렴이 피고인이 가한 외상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판결 내용을 공개한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사인이 병사이든 외인사이든 법원은 결국 사망 원인을 제공한 경찰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