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경남 등 수만 가구 암흑천지
부산선 크레인 무너져 인부 사망
파도 넘친 마린시티 아수라장
울주 구조활동 하던 소방대원 실종
현대차 울산 1,2공장 일시 중단
지진 악몽 경주도 곳곳 급류 피해
서천둔지 車 수십대 급류 휩쓸려
이례적으로 발생한 10월 태풍 차바의 습격에 남부지방이 물바다로 변했다. 곳곳에서 강물이 범람해 가옥과 차량이 침수됐고 부산에서만 3명이 숨지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울산은 70년만의 물폭탄을 맞았다.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KTX 열차 운행이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4일 밤부터 5일 오전까지 태풍 영향권의 든 제주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역대급 강풍으로 5일 새벽 도내 5만2,413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해 암흑천지로 바뀌었고 정수장까지 멈춰서면서 일부 지역은 오후 늦게까지 단수가 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국가풍력실증연구단지내에 설치된 50m 길이 풍력발전기 날개와 제주시 노형동의 한 공사장에 설치된 대형 타워크레인도 강풍에 부러졌다. 이날 제주 고산지역의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56.5m를 기록했다.
해상 사고도 발생했다. 전남 여수시 오동도 앞바다에서는 여객선이 좌초해 승선원 2명이 바다에 빠졌지만 해경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여수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4분쯤 여수시 덕충동 엑스포 신항부두에서 1,320톤급 여객선이 좌초됐다. 구조 과정에서 방파제를 걸어 나오던 승선원 2명과 122구조대 4명이 높은 파도에 휩쓸렸지만 전원이 무사히 구조됐다.
부산에서는 인명피해가 컸다. 이날 오전 11시쯤 부산 영도구 동삼동 고신대 건축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강풍에 쓰러져 인부 숙소에 머물던 공사관계자 오모(59)씨가 숨지는 등 부산에서만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산의 먹거리 명소인 영도구 동삼동 태종대 자갈마당의 포장마차 30여곳은 강풍과 폭우에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쑥대밭이 됐다.
부산의 부촌으로 알려진 해운대구 마린시티는 이날 오전 해일에 맞먹는 파도가 방파제와 방수벽을 넘어 도로를 덮쳐 아수라장이 됐다. 해안 매립지에 조성된 이 곳은 2003년 태풍 매미때 한 건물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차량 수백대가 침수됐고 뎬무(2010년) 볼라벤(2012년) 등 태풍 때마다 상습 피해를 입었다.
6일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장인 해운대해수욕장 비프빌리지가 태풍에 파손되면서 행사 차질이 우려된다.
울산에는 이날 북구 매곡동에 시간당 최고 124㎜의 물폭탄이 쏟아지는 등 곳에 따라 400㎜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져 주민 1명이 숨졌다.
이날 오후 12시 6분께 울주군 청량면 양동1길에서 주민고립 신고를 받고 구조 출동한 온산소방서 소속 소방공무원 강모(29)씨가 실종되기도 했다.
아직 미혼으로 4년 전 소방공무원으로 입문했던 강씨는 이날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주택 옥상에 주민 6명이 고립돼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온산119안전센터 동료 2명과 함께 구조에 나섰다가 돌아오던 중 인근 회야강이 범람하면서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휩쓸렸다.
조인재 울산소방본부장은 “실종직후부터 수색작업을 펼쳤으나 물살이 거센데다 황토물로 인해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실종지점에서 하류 10㎞지점이 바다여서 바다로 떠내려 가지 않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 때 홍수경보가 내려진 태화강이 범람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공장은 침수피해를 입어 3시간 40분 동안 가동이 중단됐다. 2공장은 이날 밤 늦게까지 복구가 되지 않아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또 현대차 울산공신차 출고장에서 판매대기중이던 신차 수십대가 물에 잠겼다.
이날 오전 300㎜의 폭우가 집중된 울주군 언양 반천현대아파트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주차된 차량 수십대가 물에 떠내려 갔다.
또 이날 오전 11시 37분께 울산역 부근 전차선이 단전되면서 경부선 KTX 운행이 오후 2시 34분까지 중단됐다. 단전은 울산역 북쪽 부근 철길 위 도로에 설치된 난간이 바람에 날려 전차선 위에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경부선 원동역∼물금역 구간과 동해남부선 호계역∼모화역 구간 등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등 일반열차도 토사유입과 침수 등으로 운행이 중단됐다. 동해남부선 경주역∼부전역 구간은 선로유실 피해가 커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울산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266㎜의 비가 내려 10월 하루치로는 1945년 151㎜ 이래 71년 만에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울산지역의 기록적 폭우는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이 만조시간과 겹쳐 빗물이 바다로 충분히 빠져나가지 못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남은 이날 오전 11시까지 거제 밀양 통영 하동 남해 창원 함안 등 7개 시ㆍ군 일부 지역에 정전이 발생해 주민 5만 2,000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경북 포항에서도 저지대 곳곳이 물에 잠기고 차량 10여 대가 떠내려가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건물 44곳이 침수했고 섬안큰다리 하부 등 도로 13곳의 통행이 통제됐다가 오후에 모두 해제됐다. 한 달 전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울릉도에는 90㎜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려 일부 지역 낙석과 토사 유출이 잇따랐다. 울릉읍 사동 가두봉 일대는 지난 폭우로 길이 40m의 피암터널이 붕괴되기도 했다.
경북 경주에서는 형산강 지류 서천둔치에 주차해둔 차량 40여대가 급류에 떠내려 가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55분께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 수렴산장 인근에서 60대 트럭운전수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불국동 안길과 황성동 유림 지하도가 물에 잠기는 등 하천 4곳 둑이 유실됐다. 외동읍과 내남면을 연결하는 도로 등 6곳에서 산사태가 났고, 도로 비탈면 9곳이 유실됐다.
경주시 관계자는 “9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문화제 시설 일부가 불어난 형산강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며 “정밀 조사할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 복구 중인 황남동과 월성동 등 한옥에는 미리 비닐을 덮고 모래주머니를 달면서 2차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황남동 일부 주민은 태풍이 오기 전 미리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첨성대를 비롯한 문화재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