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위작을 전문으로 판별하는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이 새로 만들어진다. 미술품 유통업자들은 화랑과 경매회사를 동시 운영할 수 있지만 겸업의 경우 화랑 소장품을 경매에 내지 못하는 등의 이해상충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술품 유통 활성화를 위해 500만원 이하의 미술품을 구입할 때는 24개월 무이자할부 혜택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의 미술품유통법 제정을 골자로 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천경자, 이우환 화백의 위작 논란 이후 세 차례 토론회까지 거쳐 마련한 대응책이다. 미술품유통법은 올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 법안에서는 지금까지 자유업이었던 화랑, 경매회사들을 미술품유통업으로 정의했다. 미술품유통업은 화랑, 경매회사, 기타 미술품판매업으로 나눠 각각 등록, 허가, 신고하도록 했다. 전시나 작가 육성 등 공적 활동 없는 뒷거래 위주의 중개상들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다. 이에 따라 화랑은 등록 때 위작방지대책과 함께 관리ㆍ육성하는 작가 명단을 내야 한다. 경매회사도 위작방지대책은 물론, 자본금 2억~3억원에다 일정 규모 이상의 경매장 시설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 현재 운영 중인 10여 곳 정도의 경매회사들이 맞출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문체부는 설명했다. 관련 규정을 어길 경우 과태료를 내야 하고 위작 거래에 연루되면 등록 취소,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받는다.
미술품 거래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유통업자는 거래 미술품 이력을 관리하고 거래 때는 작품 보증서를 의무 발급해야 한다. 보유, 거래 내역을 모두 제출토록 하는 ‘미술품 등록제’ ‘미술품 거래이력 신고제’ 도입은 미뤄졌다. 거래자 신분이 너무 자세히 노출되면 미술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미술계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당초 화랑, 경매, 감정을 겸업하지 못하게 하려던 것도 ‘이해관계 상충 방지 의무화’ 정도로 하향 조정됐다. 겸업 금지는 화랑들이 소유 작품을 자신들이 감정해 경매에 내놓은 뒤 고액으로 되사 그림값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이었지만 역시 시장 위축 우려로 이번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은 “우선 자율로 해보고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법원, 국세청 등 국가기관의 미술품 감정 요청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도 만든다. 민간감정기관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 활동은 국가기관이 요청할 때로 한정했다.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국내에 손꼽히는 미술품 감정 전문가는 40여명 수준이어서 일단 인력 풀 자체가 작다”며 “감정 업무만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등과 손잡고 감정 역량을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맡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도입이 거론되었던 ‘미술품 감정사 자격제’도 없던 일로 했다. 감정 업무의 전문성이 교육이나 자격증만으로 입증되긴 어렵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이다.
미술품 유통 활성화를 위해서는 500만원 이하 미술품 구입 때 24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도록 한다. 정부가 구축한 인터넷 사이트에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으면 학교, 군부대 등 공공기관들이 적극 빌려 쓸 수 있도록 해 작품 대여도 활성화한다.
이날 발표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방안은 전체적으로 볼 때 지난 6월 이후 토론회 등에서 제기된 미술계의 우려를 감안해 문체부 초안에서 다소 후퇴한 내용이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여전히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온다. 미술 전문 캐슬린 킴 변호사는 “주요 작품 거래에 관련된 사람이 500여명 내외인 한국 미술 시장에서 기존 법으로 얼마든지 처벌 가능한 행위를 두고 별도의 유통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는 “실행돼 봐야 알겠으나 결국 ‘투명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에 관계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만큼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정무 한예종 교수는 “화랑ㆍ경매업 겸업금지가 관철돼야 함은 물론 규제에 비해 모호한 지원방향 역시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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