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6년 전인 2010년 처음으로 대통령직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가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와 손을 맞잡고 201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문재벌 집안 출신으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아래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전형적인 보수우파 정치인은 집권 후 평화주의자로 변신해 54년 내전을 종결하는 데 기여한 지도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1951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태어난 산토스는 다수의 정치인을 배출했고 2007년까지 유력 신문사 ‘엘 티엠포’의 대주주를 지냈던 명문 산토스 가문 출신이다. 90년대부터 장관직을 맡았던 그는 2006년 친미 보수성향 대중정치인 알바로 우리베를 지지하는 ‘우리비스타’를 위한 신당 국가연합사회당 창당에 참여했다.
친미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민주주의적 안보’를 주창한 우리베 전 대통령 아래서 국방장관을 맡은 산토스는 FARC 등 반군을 상대로 초강경 노선을 취했다. 특히 2008년 7월 6년 동안 FARC에 억류돼 있던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대선후보 등 14명을 피를 흘리지 않고 구출하는 데 성공하며 인기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FARC 수뇌부 중 한명인 라울 레예스를 살해하기 위해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 예고 없는 폭격을 가했다가 외교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산토스의 강경 노선은 국민들의 대대적 지지를 받았다. 2010년 우리베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대선에 나선 산토스는 69%의 압도적인 득표로 대권을 쥐었다. 그러나 우리베 전 대통령의 계승자로 여겨졌던 그가 취임하자마자 한 일은 반미 성향이 강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당시 대통령과의 관계개선이었다. 뒤이어 2012년부터는 FARC와 4년간 이어질 평화협정을 개시하며 정치노선을 크게 바꿨다.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우리베 전 대통령과는 자연스레 반목하게 됐다.
2014년 대선에서 우리베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 오스카 이반 술루아가 민주중심당 후보와 맞붙은 산토스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는 패했지만 결선에서 뒤집어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선에서 평화협상 지속을 공약으로 내걸어 승리를 거뒀던 그는 정작 평화협정 승인 국민투표가 우리베 전 대통령의 협정 반대 공세에 휘말려 부결되면서 완수를 목전에 두고 좌절했다.
평화협정 국민투표가 예상 외로 부결되자 서구 언론들은 한때 산토스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불가능해졌다는 예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노벨위원회는 예상을 깨고 “국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정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이뤄냈다”고 평가하며 산토스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겼다.
위원회는 “평화 이행이 중지되고 다시 내전에 휩싸일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며 이번 수상 결정이 사실상 완수되지 못한 평화협정을 격려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측은 산토스 대통령과 달리 협상 파트너인 론도뇨가 상을 공동 수상하지 못한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론도뇨가 전쟁범죄 혐의를 벗지 못했기에 수상자로 선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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