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감이 안 보인다”는 여론조사 결과
박수 받으며 청와대 떠난 역대 대통령 없어
능력, 리더십, 정당성 갖췄는지 깊이 고민해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 싱크탱크 출범은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500명이 넘는 교수를 발기인에 참여시킨 것은 ‘대세론’을 확산시켜 본선 레이스에 곧장 내달리겠다는 전략이다. 안철수, 박원순, 손학규 등 다른 야권후보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세몰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도 잰걸음으로 뒤를 쫓고 있다. 여권 후보들도 대응에 분주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측은 이미 국내에서 정치 참여를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고 김무성, 유승민, 오세훈 등도 강연과 민생탐방으로 저변을 다지고 있다.
전례로 볼 때 대선 승자는 최소 2년 전쯤에 잠재적 주자로 거론됐던 사람이다. 내년 대선의 승자도 지금 이름이 거론되는 열댓 명 가운데 한 명이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잠재적 대선 후보는 넘쳐 나지만 정작 국민에게 확실히 각인된 후보는 드물다.
조선일보가 최근 대선 후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을 만한 사람인가’란 질문을 던졌는데 누구도 ‘그렇다’는 긍정 평가가 50%를 넘지 못했다. 지지율 선두를 유지하는 반기문도 아니다(41%)라는 응답이 그렇다(38%)보다 높았고, 문재인, 안철수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이명박 후보가 대선 1년 반 전 ‘대통령감’이라는 응답이 50%를 훨씬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유권자들의 인색한 반응은 한마디로 “대통령 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정치권 주변의 평가도 그리 다르지 않다. 반기문은 정치 경험 부족, 문재인은 외연 확대의 한계, 안철수는 방향성 부재, 박원순은 당내 기반 취약, 손학규는 기성 정치인 이미지, 유승민은 낮은 인지도 등이 각각 발목을 잡고 있다.
국민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는 인물이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1987년 민주화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어느 대통령도 국민의 축복을 받으며 떠나지 못했다. 정치력 부재와 도덕적 결함, 소통 부족 등으로 국론 분열을 심화시켰고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대통령제 실패로 보고 개헌론으로 연결시키지만 합당한 분석은 아닌 듯하다. 가령 대통령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로 정치체제를 바꾼다고 성공한 대통령이나 수상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성공한 대통령의 조건으로 효율적인 권력운영시스템이 필요하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대통령 개인의 능력과 리더십, 권위, 정당성 같은 요인이 더 중요하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에는 시대정신이 있다. 대부분 리더십과 시대정신이 맞는 쪽이 선거에서 이겼다. 김영삼정부 때는 문민화, 김대중정부 때는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이었다. 내년 대선의 시대적 과제는 불평등 해소와 남북관계를 꼽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양극화 해소는 우선적인 과제임에 틀림없다. 외부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안전을 위해 일촉즉발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푸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이런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변혁적 리더십과 개혁의지, 정치적 신뢰, 소통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 격랑에 휘말려 있는 ‘대한민국호’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웃의 지도자들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 ‘대국굴기’를 외치는 시진핑과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아베,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지도자들과 맞설 만큼의 역량과 준비가 돼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의 깨어있는 의식도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지난번 대선은 명백한 선거 실패였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정치학자 토크 빌의 말이 국민 수준에 대한 냉소와 자조의 의미는 아니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감당할 준비가 안 된 대선 주자와 이를 옳게 판별하지 못하는 국민이라면 내년 대선도 실패한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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