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극이 따로 없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도 아닌데 방송인 김제동(41)이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안보를 위한 국가 정책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국방위원회(국방위) 국감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당혹스럽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이 ‘사건’에 불을 당겼다. 김제동이 지난해 7월 JTBC 토크쇼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한 “군 사령관 사모님께 아주머니라고 부르며 안내해 13일 간 영창에 수감됐다”고 한 말을 문제 삼았다. “김제동이 군의 신뢰를 실추시켰다”며 국방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한 데 이어 그를 국감 증인으로 세우려 하면서 ‘일’이 커졌다.
국감 이슈는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를 둘러싼 갈등과 방산 비리는 묻히고, ‘김제동 영창 발언 검증’이 최대 쟁점이 됐다. 국방부 공무원들은 20여 전 김제동의 병역 기록을 뒤져야 했고, 공무는 엉뚱하게 한 연예인의 병역을 확인하는 데 시간과 체력을 소비됐다.
김제동을 둘러싼 일대 소동은 뒤틀린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국방 현안이 쌓여있는데도 연예인의 우스갯소리에 더 귀 기울인 국회도 문제이지만 확성기 역할을 하는 언론도 공범이다.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곧잘 하는 연예인을 ‘폴리테이너’(Politainer·정치하는 연예인이라는 조어)라 부르며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김제동 사태’를 일으킨 토양이다. 최근 보수-진보 갈등으로 까지 확전된 김제동 사태를 엔터테인먼트팀 기자들이 뾰족한 수다로 돌아봤다.
양승준 기자(양)=“김제동이 방송에서 웃자고 한 군대 영창 발언을 국감에서 정색하고 다뤄 너무 황당했다. 과거 발언 문제 삼아 사상 검증하는 식이라 인사청문회인 줄 알았다. 김제동이 한 말은 지난해 방송 후 어떤 논란도 없었다. 그의 발언을 시청자들은 농담 혹은 상식 선에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김제동의 발언을 문제 삼은 시기와 장소 모두 납득이 안 된다. 국감 이슈 ‘물타기’란 생각 밖에 안 든다.”
라제기 기자(라)=“김제동 영창 발언을 국감에서 다룰 일은 아니었다. 한 발 양보해 국방부가 홍보나 이미지 개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문제 삼을 수 있다고는 보는데, 국방부가 그렇게 한가한 곳도 아니잖나. ‘뭐시 중한디’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지나치게 사소한 사항을 쟁점화하고 에너지를 낭비했다.”
강은영 기자(강)=“김제동 영창 진실 의혹 제기에 놀아난 기분이다. 휩쓸린 언론도 문제다. 이 건에 대한 프레임을 ‘진실 공방’으로 다뤘는데, 연예인의 발언을 국감에서 이슈화한 걸 먼저 문제 삼았어야 했다. 방산 비리에 사드 문제까지 중차대한 사안이 첩첩산중인데 제대로 다루지도 못 했다. 나중엔 ‘김제동 거짓말했다’ 식으로 보도가 나오는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라=“김제동의 대응은 아쉽다. 국감 증인 채택 논의 얘기에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반응했다는데 위세를 보여주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영창과 군기교육대를 자신이 복무한 부대에서 혼용해서 썼다며 영창 수감 여부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는데, 자신의 발언이 구설에 오른 만큼 ‘혼돈을 준 점은 죄송하다’ 식으로 정리했으면 덜 비판 받았을 거다. 유명인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만큼 자신의 발언에 대해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양=“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김제동의 대응 방식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발언이 국감에서 쟁점화된 것 자체가 더 큰 문제 아닌가. 만약 김제동이 방송에서 영창이 아니라 군기교육대 갔다고 하면 이번 국감에서 도마 위에 오르지 않았을까? 아니라고 본다. 김제동을 국감 증인석에 세우려 했던 점 등을 볼 때 김제동은 이미 정치적 표적이 됐다는 인상이 강하다.”
강=“배우 문성근과 명계남 등 정치적 목소리를 냈던 연예인들이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 김제동이 유일하게 남은 ‘진보 투사’ 같은 이미지가 있다. 사드 문제를 비롯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 투쟁에 대한 생각을 공개석상이나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더 타깃이 되는 것 같다.”
라=“자기편이 아닌 폴리테이너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이 반영된 게 아니겠나. 가뜩이나 미운 데 이번에 이슈가 되자 그에게 ‘사과하라’, ‘진실을 밝혀라’며 코너로 몰고 있는 거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나와 다른 이념을 지닌 폴리테이너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특정 사건을 계기로 특정인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촌극이 김제동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것 같다.”
강=“미국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고까지 했다. 이렇게 격렬한 표현을 썼음에도, 드니로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여론은 현지엔 없는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연예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데 반해, 한국은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유독 반감이 심하다.”
양=“연예인들에 대한 폄하가 깔려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딴따라’가 ‘감히’ 정치에 끼어들다니 같은 인식이다. 연예인들이 주체적으로 정치,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낼 때 공격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항상 이런 논란이 터지면 ‘개그맨이면 개그맨답게’ 식의 프레임이 자동반사처럼 나오잖나.”
라=“폴리테이너란 말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순재, 강부자, 최불암처럼 직접 정치에 참여했으면 몰라도,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고 해서 폴리테이너라고 부르는 게 맞는 지 의문이다. 정치, 사회적 고민은 누구나 하는 거고 그 발언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폴리테이너란 색안경은 과한 게 아닌가 싶다.”
강=“언로가 막힌 시대라 더 그들의 입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것 같다. 한 때 ‘A급 MC’로 통했던 김제동은 현재 지상파에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다. 외압설 등에 휘말리기도 하고 점점 방송에서 설 곳이 좁아 드는 느낌이다. 안타까우면서도 다른 생각도 든다. 언젠가 연예인이 대놓고 특정 구청장 선거 운동을 돕는 걸 봤는데, 부정적 이미지가 계속 떠나질 않는다.”
양=“연예인이 정치적 소신을 연예 활동에 연관시키거나 끌어 들이지만 않으면 문제가 될 건 없다고 본다. 김제동이 자신이 진행하는 JTBC ‘톡투유’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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