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건 북한 체제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당 조직지도부 핵심세력이 김정은이 저렇게 하도록 유도하는 거지요. 체제가 무너지면 자기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도부는 체제를 연장하기 위해서 뭐든 할 겁니다. 핵실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소설 ‘비운의 남자 장성택’을 펴낸 탈북 소설가 장해성(71)씨는 북한 정권 교체를 통한 체제 변화 가능성을 묻자 “설사 김정은이 갑자기 죽는다 해도 지도부는 김일성 가문의 상징적인 누군가를 우상처럼 세워놓고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소설 ‘장성택’은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삶을 통해 북한 지도부 내부의 권력투쟁을 그린다. 평민 출신으로 김일성의 딸 김경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최고위층이 된 장성택은 2013년 조카 김정은에 의해 처형됐다. 장씨는 “실제로 1977년 평안북도 선천군의 사슴농장에 요양 차 왔던 장성택과 1주일간 함께 지낸 적이 있다”며 “예전부터 그에 관한 글을 쓰려 했지만 생전에는 쓸 수 없었고 처형 이후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성택에 대해 “당시 당 지도부로 간 지 얼마 안 되던 때였는데 ‘나라가 이래서 되겠냐’며 걱정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소설 ‘장성택’은 김일성 독재 체제가 완성되고 이 체제가 아들 김정일에게 넘어가는 과정을 통해 북한이 어떻게 괴물 같은 나라가 됐는지 그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허구가 상당 부분 가미돼 있다. 장씨는 “기자로 일하면서 비공개 자료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소설의 80% 정도는 그러한 자료를 토대로 쓴 것”이라며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허구인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겠다”고 했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이자 김정은의 삼촌인 김평일과 김일성종합대 동창 사이라는 그는 “학생 시절 김평일과 가까이 지낸 덕에 최고위층들의 고충과 비리를 많이 알게 됐다”며 “김정일을 친형처럼 따르고 싶지만 형이라고도 부르지 못하게 하며 거리를 두고 경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이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지린성 출신인 장씨는 호위총국(경호부대) 요원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고 북한 조선중앙TV에서 기자와 작가로 20년간 일하다 1996년 탈북했다. 항일운동을 한 할아버지 덕에 비교적 안락한 상류층의 삶을 누렸지만 ‘6ㆍ25전쟁이 북한의 남침이고 김정일 출생지가 백두산이 아니라’는 것을 친구에게 말한 게 밝혀져 위험해 처하자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남한에 자리 잡은 뒤에는 국가안보통일정책연구소에서 연구위원을 역임했고 2006년 정년퇴직했다. 현재는 망명 북한 펜(PEN)센터 명예이사장이다.
장씨는 ‘장성택’에서 북한 문제 해법에 대해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체제가 몇 년 내에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그는 “김정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권력을 잡게 된다 해도 비핵화나 개방 정책 도입 같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도 북한이 사실상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에 지도부가 김정은에게 밀어붙이도록 한다는 해석이다. 그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나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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