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역에 마약 밀매와 성폭행, 음란물 유통 등 ‘자본주의형 퇴폐범죄’가 확산돼 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사실이 북한 내부 문건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 올해 들어 잇단 핵실험과 대북제재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배급제까지 중단되면서, 어떻게든 먹고 살려는 주민들이 점차 엽기적인 범죄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이에 북한은 노동당과 보위성, 보안성으로 구성된 ‘강력범죄 단속 상무 조직’을 구성해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공개총살 등 잔혹한 처벌에도 아랑곳없이 주민들의 일탈행위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보가 12일 대북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군중정치사업제강’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주민들 사이에 마약 제조와 밀매가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거래가 일상화되고, 마약을 복용한 환각상태에서 강도살인과 성폭행, 납치는 물론 음란행위를 촬영ㆍ유포하는 범죄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매춘, 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많았지만,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 체제 들어 퇴폐형 범죄로 양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군중정치사업제강은 지난 5월 제7차 당대회 이후 주민 결속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위성이 각 지역 도당과 시ㆍ군의 하부조직에 하달한 행동지침서다. 중국과 왕래가 잦은 신의주 등 국경지역뿐 아니라 함경남도, 평안남도 등 북한 전 지역에서 발생한 마약 관련 범죄사례가 적시돼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온갖 선전구호로 가득 차던 사업제강에 북한 사회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보건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이 병 치료를 위해 양귀비나 대마를 공공연하게 재배하는 실정이다.
앞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7차 당대회 당시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제국주의 사상문화는 건전한 정신을 마비시키고 사회주의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독소”라며 “우리 내부에 이색적인 사상문화와 변태적인 생활양식이 절대로 침습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 범죄로 인한 체제의 위기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북한은 마약과 성(性), 외부영상물 관련 사건을 반(反)국가범죄로 지목해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보위성 특별군사재판소가 직접 다루며 처벌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퇴폐범죄를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 6월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주민감시와 통제를 담당하는 핵심 권력기관인 보위부를 보위성으로, 우리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보안부를 보안성으로 명칭을 바꿨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