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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골프의 위대한 개척자' 박세리, 필드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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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골프의 위대한 개척자' 박세리, 필드를 떠나다

입력
2016.10.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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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 마지막 날 연장전에서 워터해저드에 빠진 볼을 쳐내기 위해 맨발투혼을 발휘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 마지막 날 연장전에서 워터해저드에 빠진 볼을 쳐내기 위해 맨발투혼을 발휘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1998년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 갓 스무살을 넘긴 박세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에 시달리던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모두가 포기하려는 순간 맨발 투혼으로 결국 우승까지 일궈낸 모습은 한국 스포츠사의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맨발 투혼 장면과 함께 흘러나온 노래 ‘상록수’는 국민 애창곡이 됐다.

박세리(39ㆍ하나금융그룹)가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 72골프장 오션코스에서 열린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통해 은퇴식을 갖고 필드에서의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한국 골프는 박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세리 이전에 골프는 상류층에서 즐기는 고급 ‘놀이’였다. 하지만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골프는 국민 스포츠의 반열에 올랐다. 골프를 몰라도 골프 중계를 시청하는 사람이 생겼을 정도다.

'한국여자골프의 개척자' 박세리가 13일 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치고 열린 은퇴식에서 동료들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여자골프의 개척자' 박세리가 13일 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치고 열린 은퇴식에서 동료들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초등생 시절 육상선수로 전국대회에도 출전했던 박세리는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아버지 박준철씨의 권유로 골프채를 쥐었다. 생소한 운동이었지만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 선수들 보다 월등한 기량을 갖추게 됐다. 그는 중학생 때 이미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명성을 떨쳤다. 대전 갈마중 3학년이던 1992년 프로대회인 라일 앤드 스코트오픈에서 쟁쟁한 프로 언니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고교 1학년 때도 톰보이오픈 정상을 밟아 아마추어와는 격을 달리했다.

1996년 프로에 데뷔한 박세리는 그 해 11개 대회에 출전해 4승을 거두고, 2위는 6차례 올랐다. 출전한 대회 모두 톱10에 들었다. 데뷔 첫 해 상금왕을 거머쥐었고 국내에는 더 이상 적수가 없었다.

한국이 좁았던 박세리는 1997년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투어출전 자격시험)에 응시해 수석 합격하며 세계 최고 무대에 서게 됐다. 1998년 LPGA투어에 데뷔한 박세리는 당장 세계 골프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데뷔 첫 우승을 1998년 5월 메이저대회 LPGA 챔피언십을 통해 달성했고, 7월에는 US여자오픈을 연달아 제패했다. LPGA 투어에서 첫 우승과 두번째 우승을 모두 메이저대회로 장식한 이는 박세리가 처음이다.

그는 그 해 LPGA 투어 신인상에 이어 AP통신 올해의 여자 선수에도 선정됐다. 2003년에는 최저타수상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해 LPGA 투어에서 통산 25승을 거둬 한국인 최다승 기록을 가진 박세리는 2007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리는 이정표를 세웠다.

박세리(하나금융그룹)가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에서 열린 2016 LPGA KEB 하나은행챔피언십 1라운드 후 은퇴식에서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박세리(하나금융그룹)가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에서 열린 2016 LPGA KEB 하나은행챔피언십 1라운드 후 은퇴식에서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하지만 끝 모를 추락도 경험했다. 2004년 박세리는 1승을 더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지만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쳤다 하면 오버파 스코어였다. 80대 스코어를 자주 적어내 “주말 골퍼냐”는 비아냥도 받았다. 하지만 2006년 메이저대회 LPGA 챔피언십에서 카리 웹(42ㆍ호주)을 연장전에서 꺾고 우승하면서 부활했다. 그는 이후 2차례 더 우승컵을 보탰다.

박세리는 올해 은퇴를 앞두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여자부 감독으로 참가해 박인비(28ㆍKB금융)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LPGA투어에서 이룬 업적과 맞먹는 쾌거로, 지도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골프 하면 박세리를 떠올린다. 박세리는 어린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 선수들이 과감히 세계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지금은 박세리를 롤 모델 삼아 꿈을 키운 수많은 ‘세리 키즈’가 세계 여자골프계를 호령하고 있다. 아듀 박세리.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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