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버스 기사, 119 신고 후
부상 당한 승객 부축해 대피시켜
교사는 자신의 車 이용 환자이송
이름없는 의인, 부상 입고 돕기도
10명의 사망자를 낸 울산 관광버스 사고 현장에서 경상도 아재들의 헌신적인 구조활동이 돋보였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이번 사고의 희생자는 더욱 컸다는 게 주변의 진술이다. 지난 달 2일 부산 곰내터널에서 유치원생을 구조했던 11명의 시민 영웅들처럼 이들 역시 자신의 선행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앞에 큰 사고가 나 사람들이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여러분(승객)께서 양해해주시면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13일 오후 10시 11분 경부고속도로 언양JC 인근을 지나던 고속버스 기사 정경식(45)씨는 눈앞에 관광버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멈춰선 것을 보고 휴대전화로 가장 먼저 119에 신고했다.
정씨는 최초 신고에 이어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씨가 사고 현장에 접근했을 때 버스 앞쪽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유리창을 깨고 7~8명의 승객이 빠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씨는 “승객들이 ‘아직까지 10명 정도가 버스에 갇혀 있다’며 울부짖었다”고 회상했다.
정씨는 때 마침 반대편 차선에 도착한 울산소방본부 구조대원들을 발견, 부상자들을 부축해 중앙분리대 너머로 건네 보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사고지점이 울산으로 들어오는 방향의 고속도로라 소방당국도 사고현장 접근에 애를 먹고 있었지만 정씨의 침착한 초동 조치 덕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정씨는 “부상을 당해 사고 승객들이 힘들어 보여서 도왔을 뿐 현장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야 다시 고속버스를 몰고 해운대로 향했지만 승객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원래 해운대에 도착해야 할 이날 오후 11시가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사고를 지켜본 시민들의 안타까움이 모두 같았던 탓이다.
자신의 차로 환자들을 긴급 후송한 교사의 기지도 빛났다. 강원 동해시 한 고교로 지난해 부임한 교사 소현섭(30)씨는 지난 13일 밤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내려가던 중 사고를 목격했다. 소씨는 화상을 입고 연기를 흡입한 부상자 4명을 자신이 몰고 온 아반떼 차에 태웠다. 그 중 한 명은 발목이 완전히 부러진 중상자였다.
소씨는 119 안내를 받아 울산 남구 한 병원에 환자들을 내려주고 휠체어로 부상자들을 모두 옮긴 뒤 병원을 떠났다. 소씨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교사라는 직업만 밝히고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소씨는 교사로 재직 중인 학교에서도 부지런한 교사로 평판이 자자했다고 한다.
해당학교 관계자는 “현장에 여러 대의 차가 있었지만 상황이 심각해 선뜻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소씨는 평소 희생적으로 일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 현장을 지나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 없는 의인은 또 있었다. 화재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A씨는 승객들이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는 과정을 도왔고 자신도 연기를 흡입하는 등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가벼운 치료를 받고 귀가했지만 역시 이름이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