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 어디 안 가죠?”
“그래, 아빠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얼른 다녀와.”
주4일제 근무를 도입한 충북 충주시의 화장품회사 에네스티의 황인호(43) 과장과 아들 지민(10)군이 금요일 아침마다 주고받는 대화다. 황씨는 월요일부터 나흘간 일하고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 사흘을 내리 쉰다. 중2, 초4, 유치원생 등 3남매를 두고 있는 황씨는 금요일 하루는 오롯이 아이들을 책임진다. 황씨는 “아이들이 금요일엔 빠르면 오후 1시 집에 오는데 아빠가 있으면 굉장히 좋아한다”며 “아들 때문에 어딜 못 간다”고 웃었다.
지난 12일 충북 충주공영버스터미널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논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에네스티 사옥을 찾았다. 직원 36명의 이 회사는 2010년부터 주4일 근무를 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서 교육 사업을 하던 황씨는 지난해 이 회사로 이직했다. 황씨는 “주말에도 울리는 전화벨과 사람을 만나는 일에 큰 스트레스를 받던 중 주4일 근무를 한다고 해 이직을 결심했다”며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소중한 성장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급은 3분의2 수준으로 줄었지만 후회는 없다.
주4일 근무는 디자이너였던 한 여직원이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기 힘들다며 하루 더 쉬게 해달라고 요청한 데서 시작됐다. 으레 사용자는 직원들이 쉬기보다는 더 많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성주(44) 에네스티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3명을 대상으로 2010년 1년 간 주4일제를 시범 운영해봤다. 우 대표는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 전 직원으로 확대했다”며 “회사가 충분히 쉬게 해주는 만큼 직원들 사이에 근무하는 동안은 더 열심히 일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김병주(33) 사원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회사에서는 30~40분 일하고 업무 중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등 늘어지는 경우도 많았다”며 “주4일 근무를 하면서 업무시간에는 좀더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안정적으로 정착됐던 건 아니다. 5일 근무하다 4일만 일하게 되면 업무량을 채우기 힘들다. 그래서 출ㆍ퇴근시간을 오전 8시 30분, 오후 6시 30분으로 늘렸다. 2년 간은 임금도 동결했다.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연차를 쓰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다 함께 연차를 쓰는 공동연차(7일)를 도입, 설이나 추석 연휴 앞뒤로 하루씩 더 쉬도록 했다.
2013년 83억원 수준이던 에네스티의 매출은 올해 처음으로 100억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도 더 뽑았다. 주4일제 도입 전보다 두 배 가량 늘었다.
오후 6시가 되자 에네스티 직원들이 한 두 명씩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30분 일찍 퇴근해도 된다. 오후 6시 47분, 우 대표가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자 에네스티 사옥의 모든 불이 꺼졌다. 충주=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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