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석수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
전립선은 고환, 정낭과 함께 정액 일부를 만드는 남성생식기관이다. 나이 들면 전립선이 비대해지거나 암이 생길 수 있다. 전립선암은 고령화와 식생활 서구화로 늘어나는 대표적인 남성암이다. 남성암 중 5위이지만 생존하고 있는 환자 수(유병률)로는 벌써 남성암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암이다. 진행이 느려 갑상선암과 함께 순한 암이고, 전립선특이항원검사라는 간단한 피검사를 통해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 암이 진단되면 병기, 나이, 몸 상태를 고려해 치료법을 정하며, 다른 암과 달리 진행이 느려 1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기대될 때 완치를 위한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를 고려한다.
아주 초기 전립선암은 치료하지 않고 두고 보거나, 주기적 검사로 병 진행을 모니터링하면서 경과에 따라 치료하는 ‘적극적 관찰법’을 쓴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는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고, 다른 장기로 퍼진 전이암은 다양한 약물 치료를 해도 완치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다행히 최근 좋은 신약이 나오면서 환자 생존율을 늘리고 있다(안타깝게도 값비싼 약이 일부 환자에게만 보험 적용되고 있다).
최근 필자 손을 떠나 세상을 떠난 환자가 문득 생각난다. 이 전립선암 환자에게 완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를 적극 권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민간요법 등 자가치료를 강하게 원해 6개월이나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립선암이 진행할 때 증가하는 전립선특이항원 수치가 계속 늘어, 다시 한 번 완치 기회가 있는 수술을 권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진행을 늦추는 약물치료인 호르몬치료(남성호르몬 차단요법)만 했다. 환자는 10년 가까이 호르몬치료로 버텼지만, 치료 내성으로 결국 암이 척추뼈로 전이됐다.
오랫동안 호르몬치료를 하면서 별 증상을 느끼지 못했던 환자는 척추에 암이 전이됐다는 얘기에 많이 당황해 했다. 의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경과였지만, 오랫동안 호르몬치료로 본인 병이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여긴 듯했다. 그럼에도 항암치료를 거부했고, 척추의 암덩어리가 신경을 눌러 하반신 마비가 돼 응급수술까지 받게 됐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는 등 적극 치료에 나섰지만 1년6개월 뒤 결국 사망했다. 80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
이런 결말을 알았더라면 환자가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암이 진단 시 많은 환자가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10년만’ 살고 싶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9988123’(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앓고 사흘째 고통 없이 영면하는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는데, 불로장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현대인에게 이것이 인간 본성을 반영한 말이 아닐까.
‘순한 암’이라는 전립선암이 치료할 필요 없는 병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단 당시에 치료하지 않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절반은 결국 치료 받게 된다. 전립선암은 병 상태에 따라 적극 치료를 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은 과학적 증거가 없는 민간요법에 매달리다가 완치할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유병장수(有病長壽)’시대라지만 적절한 치료를 병행했을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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