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소년 인권단체 회원들 토론
등골 브레이커 등 비하표현 통용
“신조어로 조롱하는 건 멈췄으면”
2. 흡연ㆍ음주 금지에선 찬반 첨예
“나이 이유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
“악영향 분명… 자율 선택 어려워”
“한 개그 프로그램에 종일 PC방에서 폐인처럼 게임만 하는 청소년이 나와요. 중학생 말투로 ‘님아 나 컵라면 주셈’ 하면서 막무가내로 떼쓰는 황당한 행동을 하죠. 잠시 후 여고생으로 분장한 남자 개그맨이 등장해 맥락도 없이 혀 짧은 소리로 ‘띠드(치즈)버거 사주세요’라는 말만 수십 번 반복하다 퇴장해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그려 희화화하는 거라 확 불쾌하더라고요. 이게 사회적 소수자를 조롱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윤서ㆍ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활동가)
‘중2병’ ‘요즘 것들’ ‘너 초딩이냐’ ‘교복충’ 등. 신조어라 부르기 무색할 만큼 흔히 쓰이는 말들이 당사자에게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짐작이라도 해 본 적 있는가. 당사자들인 청소년들이 이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16일 오후 6평 남짓 비좁은 서울 마포구 ‘교육공동체 벗’ 공부방에 모인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회원 30여명은 ‘청소년혐오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2시간 동안 토론을 벌인 뒤 “일상에서 벌어지는 청소년혐오를 멈춰달라”라고 호소했다.
청소년혐오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은 청소년혐오가 거창한 개념이 아니며 이미 일상에 스며 있다고 지적한다. 준영(활동명)씨는 “‘무서운 10대’, ‘중2병’, ‘등골 브레이커’ 같이 청소년 집단을 통틀어 비하하는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며 “이 사회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을 통제 불가능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꼬집었다. 청소년 때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는 윤쓰리(20ㆍ활동명)씨는 “백 번 잘해도 한 번 실수 하면 ‘네가 어려서 미숙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며 “‘나이답지 않게 잘한다’, ‘어른스럽다’, ‘초딩 같다’ 등 일상적인 표현 모두 청소년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불완전한 대상이라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징계하는 것 역시 청소년혐오의 일종이라는 주장을 놓고는 찬반이 첨예하다. 최근 고 백남기씨 빈소를 지키던 청소년 녹색당원이 흡연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성인에게 제지를 당했다가 충돌해 경찰까지 출동한 뒤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한 바 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오레(활동명)씨는 “담배는 노인에게 더 치명적이고 또 성인이 된다고 해서 청소년기에 유해하던 담배가 갑자기 무해해지는 것도 아니다”라며 “나이만을 이유로 못하게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에 참여했던 홍의표 신방학초등학교 교사는 “술과 담배가 유익한 건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선택할 권리를 돌려 주고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현장에서는 우려를 털어놓는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공립고등학교 국어교사 김모(27)씨는 “담당 학급에 실제로 담배를 많이 피우는 학생이 있는데 조별 활동을 하면 다른 학생이 담배 냄새로 불쾌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학이나 퇴학 같은 징계는 과하지만 흡연이나 음주는 주변에 끼치는 악영향이 분명해 자율에 맡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신체 발달 단계에 있는 학생에게 흡연이나 음주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고, 이를 허용할 경우 건전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청소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봐 달라”는 이들의 주장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토론이 끝날 무렵 윤쓰리씨는 “불과 몇 년 전 해병대 캠프에서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여전히 청소년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각종 극기훈련 캠프에 보내는 학교가 줄지 않고 있다”며 “지금의 현실에서 다시 한번 청소년혐오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앞에 어려운 숙제가 하나 더 놓였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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