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 출범 6개월 앞두고 페이퍼컴퍼니 ‘비덱’설립
최순실 모녀가 100% 지분 소유, 임직원은 딸 승마코치 1명
현지 3성급 호텔 인수했지만 예약 안돼… 직원 숙소로 쓰인 듯
자금 출처 둘러싼 의문 증폭… 검찰 수사는 여전히 미적미적
현 정권의 비선실세이자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 설립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최순실(60)씨 측이 K스포츠의 자금 유입 창구로 삼기 위해 국내와 독일에 최소 3곳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실이 18일 확인됐다. 이 중 지난해 7월 독일에 설립된 ‘비덱 스포츠 유한책임회사’(Widec Sports GmbH)가 인수한 현지의 3성급 호텔은 전화 연결은 물론 투숙 예약조차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금이 3,000여만원에 불과한 비덱의 인수자금 출처는 물론, K스포츠의 기금 집행내역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최씨 소유의 페이퍼컴퍼니는 서울 청담동 소재 ‘더블루K’와 이 회사의 독일 현지법인(The Blue K), 그리고 비덱이다. 더블루K는 K스포츠의 출범 하루 전인 올해 1월 12일 설립됐고, 2월 말 독일 법인도 세웠다. 더블루K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스포츠 유망주 육성과 스포츠 마케팅 등을 주된 사업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K스포츠의 설립 취지와 일치한다.
외형상 최씨와는 무관한 한국 법인과는 달리, 독일 법인 2곳은 최씨 모녀가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한국일보가 확인한 비덱 기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17일 2만5,000유로(약 3,131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됐다. 주주 명부를 보면 최씨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Choi, Seo Won)씨가 1만7,500유로(약 2,192만원), 최씨 딸인 정유라(Chung, Yoora)씨가 7,500유로(약 939만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더블루K 독일 법인의 자본금과 지분구조 역시 비덱과 정확히 같다.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비덱을 둘러싼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임직원이 크리스티앙 캄플라데(52), 단 한 명뿐이다. 그는 승마선수인 정씨의 독일 현지 코치다. 주소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서쪽 40㎞ 떨어진 ‘슈미텐 61389’로, 비덱이 운영 중인 3성급 호텔 ‘비덱 타우누스 호텔’의 주소다. 해당 호텔 홈페이지에는 ‘올해 6월 13일 다시 오픈했습니다’라는 공지가 떠 있는데, 작년 7월 설립된 비덱이 기존 호텔 인수 후 새단장을 거쳐 영업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이유다.
더욱이 이 호텔조차 정상 영업을 하지 않는 ‘유령호텔’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6시40분쯤(현지시간 오전 10시40분) 한국일보가 호텔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1시간 후쯤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에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세요”라는 한국어 안내가 들려왔다. 국내 대형 호텔 예약대행 사이트들을 통해 여러 날짜들로 투숙예약을 하려 해도 한결같이 ‘예약 가능한 객실이 없다’거나 ‘현재 예약할 수 없는 숙소’라는 결과만 나왔다. 해당 호텔이 정씨의 승마 훈련을 돕는 지원 인력의 숙소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비덱이 대체 무슨 돈으로 호텔을 사들였는지 의혹도 제기된다. 최씨가 개인 돈으로 인수했을 경우, 당국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면 외국환거래법 위반(해외재산도피)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만약 K스포츠재단 자금이 쓰였다면 이에 관여한 인물들에게 횡령죄나 배임죄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1월 설립 인가를 받은 K스포츠는 지난 6월까지 국내 대기업 15곳에서 총 288억원의 기금을 출연 받았다.
의심스런 대목은 더 있다. 이날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내 4대 그룹 중 한 곳의 관계자는 “K스포츠 측이 올해 초 ‘2020 도쿄 올림픽 비인기 종목 유망주 지원’ 사업에 80억원 추가 투자를 제안하며 주관사가 독일의 비덱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미 K스포츠에 수십억원의 출연금을 냈던 해당 기업은 내부 검토를 거쳐 추가 투자는 거절했다고 한다. ‘대기업→K스포츠재단→비덱’이라는 자금 흐름이 실제 있었는지는 결국 검찰의 계좌추적을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최씨가 K스포츠뿐 아니라 미르의 ‘진짜 실세’였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이성한 전 미르 사무총장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의 제안으로 참여했는데 실제로 일해 보니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차씨가 아니라 한 중년 여성이었다”며 최씨를 지목했다. ‘회장님’으로 불렸던 중년여성이 최씨라는 사실을 최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8월 19일 최씨가 ‘K스포츠는 입단속이 됐으니 미르재단 수습을 맡아 달라. 조용히 있어 달라’고 했다”고 자신을 회유하려 했다고도 주장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단체들의 K스포츠ㆍ미르재단 고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한웅재)는 조만간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두 재단의 설립 경위 및 절차와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문체부 담당자에 대한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팀은 정부 부처와 전경련ㆍ기업 관계자들을 상대로 재단 설립과 대기업 모금의 불법성 여부를 먼저 파악한 뒤 두 재단 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고발장만 봐서는) 범죄혐의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라며 “수사기관은 죄명이 있어야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만큼, 언론에 나오는 의혹들을 계속 스크린하고 있다”고 고심하고 있는 속내를 내비쳤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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