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말 산업이 활발했던 조선시대의 얘기지만 아직도 이런 말이 쓰일 때가 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나온 배경도 흥미롭다. 조선 후기 수군 총사령부가 있던 통영에, 보고를 마치고 본대로 귀환 하는 수군이 길을 잘못 들어 삼천포구로 빠졌다는 것이다. 1960년대의 진주-삼천포 열차 얘기가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일제 강점기나 조선 시대에도 이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수군 사령부 얘기가 맞을 것이다. 이제는 ‘실수하여 망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삼천포 어원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물론 영어에도 이와 유사하게 지명이나 방향에 관한 말이 제법 많다. 어떤 일이나 상황이 ‘go south’했다면 망했다는 의미다. ‘go south, ‘head south’, ‘turn south’ 모두가 비슷한 의미이고 ‘fall in value’, ‘deteriorate’, ‘fail’의 뜻으로 풀이된다. ‘All the controls went south’라고 말하면 ‘모든 통제가 실패했다’는 것인데 여기서 south는 x축 y축의 좌표에서 남쪽 방향 즉, ‘아래로’의 뜻이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질 때나 여건이 악화될 때에 쓴다. 용례를 보면 우리말의 ‘삼천포로 빠지다’와 비슷한 개념이다.
1920년대 영국에서 고기와 곡물가격이 go down(하락)이나 go worse(악화)를 언급할 때 신문 기사에서 먼저 사용한 것인데 1970년대 가장 왕성하게 쓰였다. 70년대 이후에는 주로 ‘The market keeps heading south’처럼 주로 주가나 시장에 대한 언급을 할 때 쓰였다. 금융 시장에서 극단적인 표현 ‘go terrible’, ‘go dire’, ‘go catastrophic’보다는 go south를 사용하는 것이 어감도 낫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go south’ 보다는 ‘go west’를 사용하는 점이 흥미롭다.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것을 악화되다의 뜻으로 비유한 것이다. London 교도소의 서쪽에 있는 교수대로 가는 것을 죄수들 사이에서 ‘go west’라고 말하고 이는 곧 ‘죽다 사라지다’의 의미로 통한다. 특히 젊은층에서 ‘die’, ‘perish’, ‘disappear’의 뜻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서부로 금을 캐러 가던 Wild West(서부 개척시대) 시대가 있고 젊은이에게 ‘Go west, young man, go west!’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다. 망함의 의미로 쓰는 ‘go west’와는 거리가 멀다.
Go north는 그래프 상에서 상향이 되고 북쪽을 향햐는 것이므로 증가하다의 의미로 쓰인다. 가령 ‘The deal size went north’(거래 규모가 증가했다), ‘His marriage went south and he had a drinking problem’(그는 음주 문제가 있고 결혼은 실패했다), ‘The stock market is headed south again’(주식 시장이 다시 하향 곡선을 그렸다)처럼 쓰이는 것이다. 또 전 세계인의 사용 비중을 볼 때 go south는 악화되거나 망한 일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특히 주가나 금융 시장의 동향을 말할 때 남쪽 방향은 하향이나 급락을 의미할 때 더 많이 쓰인다.
한편 1920년대 미국에서는 추격을 피하거나 도망가기 위해 남부 지역을 넘어 Mexico나 Texas로 갔다는 용도로 쓰이면서 go south가 ‘die’, ‘disappear’의 의미로도 쓰인다. 방향이나 지역이 이처럼 나라마다 다르게 쓰이는 것은 각기 유래와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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